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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31, 2015

다이빙벨’ 해외판 무상공개…네티즌, ‘홍보도우미’ 자처 SNS “박근혜 정권과 언론방송, 세월호 학살의 주범이고 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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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 해외판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가 세월호 참사 503일째를 맞은 지난 31일, 유튜브와 고발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무상으로 공개됐다.
이상호 감독은 <다이빙벨> 해외판을 무상 공개하면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감옥 갈 각오로 다이빙벨 무료 공개합니다. 정부가 이 영화 왜 막는지 보시면 압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형극장 단 한곳도 걸어주지 않았던 영화, 손바닥 극장으로 1000만 갑시다”라면서 ‘국민의 힘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다이빙벨>이 유튜브 등을 통해 무상 공개되자 트위터 등 SNS상에서는 영화를 뒤늦게 접한 네티즌들의 소감이 잇따르고 있다.
한 트위터리안은 “박근혜 정부가 왜 세월호 진상규명을 놓고 유가족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과 절박하게 싸우려 했는지와 이상호 기자님이 ‘다이빙벨’을 보다 많은 국민들이 보았으면 했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참 나쁜 정권”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그런가하면 일부 네티즌들은 영화를 본 후 리트윗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이종걸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국정원장 쌈짓돈" "새누리, 전액 비공개로 숨겨쓰려 해"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31일 정부여당이 극구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특수활동비에 대해 "국정원의 평소 정보활동과 상관없는 국정원장의 쌈짓돈"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전체 예산이 5천억원이다. 국회 전체예산과 같은 규모의 액수(4천782억원)를 국정원은 특수활동비로 쓴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그중에는 국민들이 걱정하는 보안, 1급 비밀 취급하는데 사용하는 예산이 있어서 이에 관해서는 충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전액 특수활동비를 비공개로 숨겨서 쓰겠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특수활동비가 정부 19개 부처에 편성돼 있다"면서 특수활동비는 알다시피 영수증이 없고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사적으로 유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 혈세를 힘 있는 기관의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케이> "박근혜, '사대'하다 암살된 민비 같아" "박정희도 사대주의 비판하며 개혁 모색했거늘"

펌/일본 천황께 혈서쓰고 충성 맹세한 박정희 일가 이제 일본놈들이 이용 가치가 떨어지자 맹비난 해도 속창아리없는 근혜 근영 이년들은 계속 일본놈들에게 계속 충성 뼈속 까지 친일 하고 있는 집안아닌가

일본 극우신문인 <산케이>가 31일 중국 7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기로 한 박근혜 대통령을 '사대주의자'라고 맹비난하면서 일본 폭력배들에게 암상 당한 명성황후에 빗대 파장이 일고 있다.

<산케이>는 이날자 기사 <미국-중국간 양다리 외교, 한국이 끊지 못한 '민족의 나쁜 유산'>을 통해 "이씨조선은 말기에 청→일본→청→일본→러시아→일본→러시아 등, 내외정세 변화 때마다 사대국을 계속 바꿔왔다"면서 "그 DNA를 진하게 물려받은 한국은 이씨조선의 재현을 연상케 하는 '사대주의 행태'를 드러냈다"며 박 대통령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병식에 참석키로 한 것을 비난했다.

<산케이>는 이어 "이씨왕조에는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였던 민비"라며 명성황후를 '사대주의 도착증 환자'로 규정한 뒤, "민비는 1895년 러시아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했으나 석달뒤 암살됐다"고 강조했다.

<산케이>는 그러나 명성황후를 암살한 범죄자들이 일본이라는 사실은 거론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자국의 암살 만행을 정당화했다.

<산케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박씨(박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에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글에서 사대주의를 비판하며 개혁을 모색했다"며 박 전 대통령까지 거론하면서 박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다.

문제의 기자는 <산케이> 정치부 전문위원인 노구치 히로유키(野口裕之)가 쓴 것으로, <산케이>의 이같은 망언은 아베 정권 등 일본 극우들의 시선을 대변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으면서 파장이 일 전망이다.

망치부인(후반전) 청년 노동자 죽음과 박근혜 진돗개 이름짓기놀이! 세월호 500일, 돈 받으라 문자보낸 정부! KTL 용역팀은 국정원 댓글부대? (2015. 08. 31)

망치부인(후반전) 청년 노동자 죽음과 박근혜 진돗개 이름짓기놀이!
세월호 500일, 돈 받으라 문자보낸 정부!
KTL 용역팀은 국정원 댓글부대? (2015.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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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30, 2015

"간첩이 北 보위사령관 이름도 모릅니까?"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⑨] 2010년대 간첩 조작 피해자 철이 씨

중압합동신문센터 직원들은 언론에 철이 씨의 얘기를 흘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기사는 분명 철이 씨, 자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국정원 밥 먹고 14킬로그램 찐 간첩'이라며, 무척 자극적으로 포장돼있었습니다.

당장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철이 씨 가족을 한국에 데려와 주겠다던 약속 또한 거짓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치소 공안 담당 교도관에게 국가정보원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교도관은 검사와도 만날 권한이 없지만 면담은 알아보겠노라 했습니다.

곧, 담당 검사와 면담했습니다. 테이블 위에 녹음기부터 꺼내 놓은 검사가 말했습니다.

"국정원에 알아보니, 북한에 있는 철이 씨 가족들을 데려오겠다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태국에 나오면 돌봐주겠다는 얘기던데요." 

국정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는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철이 씨. ⓒ프레시안(서어리)

"보위사령부 간첩이라면서, 사령관 이름도 모릅니까?" 

곧, 법원에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 내에 의견서를 제출하라는 서류가 날아왔습니다. 의견서 제출 기한이 점점 다가왔지만 철이 씨를 담당하는 국선 변호사는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의견서는 기한 내에 꼭 제출해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철이 씨는 그저 손톱만 깨물었습니다. 기한이 다 될 즈음 초조해진 철이 씨는 면담 자리에서 검사에게 의견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검사는 기한 내에 꼭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법원에 의견서를 보낼 때 봉인이 되는지, 구치소 교도관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교도관은 '여기서 나가는 모든 문서는 검열된다'고 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의견서에 자백한 내용을 뒤집어서 쓰면, 검열에 걸려 다시 국정원에 끌려갈 줄 알았어요. 내곡동에서 조사받을 때 건물 지하에 고문하던 데가 있다고 어디서 들었거든요." 

결국 진술을 번복하지 못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의견서를 제출하는 날, 국선 변호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교도관은 편지 또한 검열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편지에 '진술을 번복하고 싶다'는 말은 차마 쓸 수 없었습니다. 대신 '재판에 관해 물어볼 얘기가 있으니 만나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철이 씨는 의견서 제출 시한에 쫓겨 국선 변호인 접견도 하지 못 한 채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의견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성문은 따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동 도우미가 반성문은 안 쓰느냐며 반성문 양식을 그려줬습니다. 무조건 써야하는 건 줄 알고, 반성문도 썼습니다.

▲중앙합동신문센터. ⓒ프레시안(최형락)

며칠 뒤인 3월 말경, 어떤 변호사가 철이 씨 접견을 신청했습니다. 나가 보니, 철이 씨가 알던 국선 변호사 이름과는 달랐습니다. 그 변호사는 철이 씨가 편지를 보낸 국선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김진형 변호사입니다." 

'변호사를 가장한 프락치인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바짝 경계하며, 김 변호사가 묻는 말에 국정원에 진술한 대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 질문과 대답이 오갔습니다. 

"보위사령관 이름이 뭔가요?" 
"…모릅니다." 

김 변호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공작 임무를 받았다는 분이, 사령관 이름도 모릅니까?" 

철이 씨가 우물쭈물하자, 김 변호사가 "'민변'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철이 씨는 "국정원에서 들어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우리는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니 그저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왈칵 눈물을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느새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됐습니다.

3월 27일 오후,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는 기자 회견이 열렸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증거 조작 사실이 밝혀지며 세간이 시끌시끌하던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변은 또다시 국정원의 간첩 조작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온 나라가 다시 발칵 뒤집혔습니다.

▲민변 장경욱 변호사와 철이 씨. ⓒ프레시안(서어리)

"재판정에서 봅시다" 

기자 회견에서, 민변 변호사들은 기소된 피고인을 검찰이 검찰청으로 불러 변호인 접견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오전이었습니다. 김진형 변호사는 철이 씨에게 오후에는 민변의 다른 변호사가 찾아올 거라며, 그전까진 누구도 만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철이 씨는 자신에게 법적으로 어떤 권리가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점심에 검사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북한은 변호사보다 검사가 세니까…' 망설이던 철이 씨는 검사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검사 방에 가 보니, 오전에 만난 김 변호사가 먼저 와 있었습니다. 김 변호사가 검사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공소 제기 이후에 왜 피고인을 부르는 겁니까? 저희가 철이 씨 변호를 맡기로 해 오후에 접견할 예정이었습니다." 

뒤이어 민변 장경욱 변호사까지 도착해, 다른 방으로 철이 씨를 데려갔습니다. 장 변호사는 철이 씨를 타일렀습니다. 

"공소 제기가 된 상태니, 검사가 철이 씨를 부를 권한이 없습니다. 이제 검사가 부르면, 가지 않겠다고 하세요."

그날 저녁, 검사는 구치소 교도관들을 통해 철이 씨를 또 불러냈습니다. 거절하니, 검사가 직접 구치소에 오겠다며 만나자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또 호출이 왔습니다. "변호사님이 이제 검사가 날 소환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고 하니, 교도관들이 아니라며 "꼭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지 않을 경우, 불출석 사유서를 써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고 하니, 교도관들은 불러주는 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상기 본인은 변호인으로부터 변호인의 접견 전까지는 누구도 만나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금일 출정을 불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차후 검사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검사의 호출은 계속됐습니다. 화가 난 철이 씨는 직접 검사를 찾아갔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한 진술들을 계속 뒤집고 싶었습니다. 국정원은 분명히 언론에 제 얘기를 안 내겠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이 저한테 집도 주고 가족들도 데려와 주겠다고 한 게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라 진술을 뒤집으려고 했는데, 국선 변호사를 만나지 못 해서 의견서와 반성문을 쓴 것입니다."

검사가 말했습니다. 

"그럼, 재판정에서 봅시다."

▲1심 판결문. ⓒ프레시안(서어리)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피고인이 합신센터 조사관들 또는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한 자백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졌다는 점이 확실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인의 자백진술을 내용으로 한 이 부분 각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 사실은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2014년 9월, 재판부는 철이 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검찰 측이 제시한 증거는 철이 씨의 자백이 유일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백은 변호인의 조력 없는, 심리적 불안감과 위축 속에서 작성한 것이라 증거로서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간첩 무죄'. 너무도 기다려왔던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1년 하고도 1개월 만에, 철이 씨는 지긋지긋했던 누명을 벗었습니다. 

무죄 선고와 동시에, 오랜 구치소 생활도 끝났습니다. 구치소에 있는 짐은 그대로 둔 채, 변호사들과 함께 법원을 나섰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고마웠어요. 나는 간첩이 아니니까 당연한 판결이긴 한데, 그렇게 되기 쉽지 않잖아요. 1심 재판부도 큰 결심 해주셨고, 변호사님들에게 특히 고맙고. 한국에 편향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도 진실을 밝히자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만으로 따뜻함을 느꼈어요."

▲철이 씨 주민등록증. ⓒ프레시안(서어리)

"늘 미행당하는 기분" 

2014년 11월, 철이 씨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습니다. 드디어 남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셈이었습니다.

보통은 신청만 하면 되지만, 철이 씨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주민등록증 하나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이 되었음에도, 철이 씨는 한동안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통일부가 철이 씨의 재판이 모두 끝날 때까지 보호 여부 결정을 보류한 것입니다. '보호 결정 보류'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철이 씨는 정부 보호를 받는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재판이 무죄로 끝날 때까지는 집도 받지 못하고 정착 지원금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남한 땅에 아는 이 하나 없는 철이 씨는 변호사들과 종교 단체 도움을 받아 근근이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변호사들은 철이 씨에 대한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허가하고,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 따른 보호 결정을 서둘러 달라며 국정원과 통일부에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됐지만, 철이 씨는 남들처럼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늘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받는 듯한 느낌에 시달립니다. 

"제가 동네 편의점에서 밤에 자주 술을 마시거든요. 그런데 저랑 같이 마시던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누가 저를 계속 쳐다본다고요. 저번에는 전철을 탔다가 잘못 탄 줄 알아서 후다닥 내렸는데, 어떤 여자도 같이 내리더라고요. 종점이라 문이 오래 열려 있었는데 갑자기 제가 내리니까 같이 뛰어내린 게 이상해서 '날 미행하느냐'고 물어보니 말도 없이 그냥 쌩 하고 가더라고요. 오해일 순 있는데 찜찜하더라고요.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아요. 난 간첩이 아니니까요. 따라다니다 힘들면 그만두겠지요. 같이 입국한 탈북자 친구들도 웃어요. 내가 간첩이면 자기들도 간첩이라고요."

ⓒ프레시안(서어리)

"합리적 의심을 갖고 바라봐주세요" 

철이 씨는 요즘도 계속 재판정에 나섭니다. 검찰 측에서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철이 씨는 생일을 맞았습니다. 생일 바로 다음 날이 2심 공판이 열리던 날이라, 공판이 끝나고 변호사들과 늦은 생일 파티를 했습니다. 케이크 촛불을 끄는 철이 씨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습니다.

"국정원에서 조사받을 땐 '한국에 왜 왔지' 하고 후회를 많이 했어요. 그냥 그 땅(북한)에서 죽을걸. 그러면 적어도 내가 자라던 땅에는 묻힐 텐데. 여기서는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억울했거든요. 그래서 어찌 됐든 살아야 하긴 하니까 허위 자백도 하게 된 거죠.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이제 후회는 하지 않을 건데, 정말이지 저는 남한 와서 이런 고초를 겪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북한에 있었을 땐 워낙 계급 문제 때문에 사회에 대한 원망이 많아서 남한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 있었거든요. 그랬던 제가 간첩으로 몰리다니…. 

저 같은 사건이 생기는 건 결국 분단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봐요. 반세기 넘게 남북이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 편향적 사고를 갖게 되고, 또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특정 세력이 자기 주의주장이 옳다는 걸 입증하고 자기 지위를 유지하려고 간첩 사건 같은 걸 만들어내서 힘없는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고. 저는 이런 사회 풍조가 가슴이 아파요. 

사건들이 제기되면 우선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사건이든 다른 비슷한 사건이든 국민들과 사법부 판사님들께서 부디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바로 가기 :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세월호 500일, '돈 받으라' 문자 보낸 정부" [세월호+500]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합창문화제

세월호 참사 500일째 되던 날, 해양수산부가 유가족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배·보상 안 받은 사람은 빨리 신청하라'라는 내용이다.

그 다음 날인 29일, 세월호 희생자 고(故) 최성호 군 아버지 최경덕 씨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 섰다. '정부가 주겠다는 돈, 왜 받을 수 없나.' 이유는 명료했다.

"보상금을 받으면, 정부와 화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실제로 그렇다. 해양수산부가 제시한 세월호 참사 배·보상 기준에는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는 내용이 있다. 정부가 잘못한 게 없다면, 지난 500여 일 동안 유가족이 흘린 땀과 눈물은 허사가 된다. 정부가 제대로 책임을 지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라는 것. 그래서 이런 비극이 또 생기지 않게끔 하라는 것. 이런 요구를 하느라 밥을 거르고 거리를 누볐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의 책임을 묻지 말라니.  

▲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참사 501일째인 29일 오후, 서울역과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100여 명과 시민 100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 국민대회'에 참가했다. 이어 이들은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했다. 이날 7시에 열린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합창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행사를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직접 합창단을 꾸렸다. 이들은 평화의 나무 합창단과 함께 약 한달 반 동안 연습했다. 그리고 이날 무대에 올라 공연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그날이 오면> 등을 합창하는 유가족들을 보며, 시민들은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광화문을 찾은 시민 유지은 씨는 "벌써 500일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계절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바뀐 게 없다는 이야기다.

"생명보다 돈을 앞세우는 풍토가 참사를 불렀다. 그런데 여전히 '생명보다 돈'이다. 참사의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정부는 '돈 얼마 주면 되느냐'라고만 한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대학생 김현경 씨는 "(합창문화제가) 유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한계는 분명하다. 참사 후 특별법이 제정되고 특별조사위가 꾸려졌지만, 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여전히 요원하다.  

고(故)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무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딱 1년 전인 지난해 8월, 광화문과 국회에서 단식·점거 농성을 했다. 당시 국민 600만 명이 서명으로 힘을 보탰다. 그때는 1년만 지나면 억울함을 풀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참사 실종자(미수습자) 9명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유가족 최경덕 씨는 이 대목을 성토했다. 최 씨는 "(바다에 잠긴) 세월호 창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신 유실을 막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최 씨는 "유가족이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겠다는 걸, 정부가 거절했다. 인양 지점 1마일 안에 접근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아이들과 함께 바다에 잠긴 세월호를 직접 봐야겠다는 입장이다. 최 씨는 "오는 9월 1일, 유가족들이 동거차도(세월호 침몰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섬)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서 세월호 인양 장면을 직접 보겠다는 게다.  

유가족들이 이야기 하는 "인양"은 그저 배만 건져 올리는 게 아니다. 실종자 9명도 함께 찾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이날 실종자 9명의 얼굴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서울역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이들이 전한 메시지다.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혁규, 권재근, 이영숙. 
세월호 안에 여전히 단원고 학생 4명과 2명의 선생님, 일반인 희생자 3명이 있습니다.
이들이 아직 여행 중이라면, 500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프레시안(최형락)

이날 합창문화제는 세월호 유가족, 평화의 나무 합창단, 성미산 마을 합창단 등이 함께 무대에 올라 <화인(火印)>을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도종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불도장(화인, 火印), 무대 위 전광판에 가사가 떴고 시민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그 옛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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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 "중국 경착륙시 한국경제 '빙하기'" "중국 5% 미만 성장시 한국 성장률 1%포인트 이상 급락"

중국경제 경착륙시 지난 8년간 미국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로 고통스런 더블 딥 위기를 경험한 한국경제는 또다시 '트리플 딥(triple-dip, 삼중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산업연구실장은 30일 보고서 <한국 경제, 트리플 딥에 빠지나?>를 통해 "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 2012년 유럽 재정위기로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경기지수가 두 번의 저점을 기록한 뒤 회복 국면에 진입했으나 최근 들어 중국의 경기 불안으로 재차 하락하고 있다"며 "트리플 딥에 대한 우려감이 확산된다"고 밝혔다.

주 실장은 "한국의 높은 중국의존도를 감안할 때 중국의 경제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막대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한국 경제의 '빙하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18.4%였던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비중(홍콩 포함)은 지난해 30.1%까지 높아졌다.

여기에다가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한국 제외시 20.3%)에 대한 우리나라 수출비중 역시 26.4%에 달하고 있다.

요컨대 두 지역을 합할 경우 우리나라 총수출의 56.5%가 중국경기 침체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만일 중국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경착륙'을 의미하는 5% 미만에 그치면 한국의 총수출은 4%p 이상, 경제성장률은 1%p 이상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됐다.

중국 경제가 5%대 성장을 하면 한국의 총수출은 2.2%p, 경제성장률은 0.6%p의 하락압력을 받는다.

반면에 중국 경제가 중국정부 호언대로 6%대 '연착륙'에 성공하면 한국의 총수출은 0.5%p, 경제성장률 0.1%p 하락 압력만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