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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ne 25, 2016

명문대 나오면 뭐해 절반이 백수인데

오늘은 개인적으로 뜻깊은 날이다. 15년 기자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계기도 가질 수 있었다.
기자 생활 전반부에는 주로 금융 쪽을 담당했다.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은행·증권·보험사 등이 주된 출입처였다. 이쪽을 출입하며 만난 취재원 중에는 세련되고 똑똑하며 신사적인 분들이 많았다. 한국의 금융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다만 자부심이 강한 만큼 이너서클도 강고했다. 모피아(재무부 영문 약자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말이 보여주듯 자기들끼리의 내부 결속력을 자랑했다.
ⓒ시사IN 윤무영 : 최중혁 기자는 교육 분야를 오래 취재했다. 그는 취재 경험을 나누며 “성공의 기준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 : 최중혁 기자는 교육 분야를 오래 취재했다. 그는 취재 경험을 나누며 “성공의 기준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애국심이 강하면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개중에는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벌써 10년 전 일인데, 하루는 북한이 핵실험을 발표하면서 난리가 났다. 이런 날은 환율이 급등하는 게 통례다. 한반도 리스크가 커지면서 원화 값어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오히려 환율이 떨어졌다. 이상해서 외환 딜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한 딜러는 다음 날 미국에서 고용지표를 새로 발표하는데 그것이 미리 반영된 결과 같다고 했다. 반면 크로스체크 차원에서 통화한 다른 딜러는 아무래도 큰손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건 나도 모르죠'라는 반응이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몇 달 뒤 또 다른 딜러와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외환 딜러는 대개 고학력자다. 유학은 기본이고, 난다 긴다 하는 세계적인 금융기관에 근무한 경험도 풍부하다.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다. 그런데 이 중 하나가 당시 외환시장에서 거액의 손실을 입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대학 동문들이 그의 손실을 만회할 방법을 궁리하던 중 북한 핵실험 사태가 터졌고, 이에 ‘몰아주자’식으로 작전을 벌이면서 환율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이너서클이 외환시장에만 있을까. 법조계·산업계·의학계·체육계…. 끝이 없다. 정운호 게이트 같은 것이 한국 사회에 끊이지 않는 이유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업을 담당하는 산업부 기자를 해보고 싶다고 하자 언론사 동기가 말렸다. '넌 사장 얼굴도 못 본다'라고. 사장들은 대학 동문인 기자만 상대해준다는 것이다.
거창한 분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이기도 하다. 며칠 전 장인어른을 모시고 병원에 가서 진료실 앞에서 한 시간쯤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진료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담당 의사가 꽁지에 불붙듯 어디론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럴 땐 십중팔구 병원에 VIP가 왕림했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일반인 진료가 차례로 밀린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공익이나 합리성이 떨어지면서 사회적 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흙수저’만 입는 것이 아니다. 최근 식사 자리에서 만난 청와대 고위 인사가 '대한민국은 참 살기 어려운 나라'라고 한탄하는 것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리 불합리한 판단·선택·결정일지라도 ‘그들만의 이너서클’에서 결정이 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구조에 그 또한 일반 회사원처럼 비참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상이 본래 그렇지 뭐’ 하면서 염세에 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도 이너서클에 들어가려 노력하는 것이다. 여기 계신 분들에게 솔직히 묻겠다. 내 자식, 아니면 가까운 주변 사람 중에라도 검사·판사·의사가 있었으면 하시는 분! 거의 모든 분이 손을 들어주셨다. 당연한 결과다. 이너서클 주변에라도 있어야 손해를 덜 보니까.
이너서클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은 그 해결책을 교육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아무래도 이너서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는 기대에서다. 그 결과 ‘영유-사초-국중-특고-명대(영어 유치원, 사립 초등학교, 국제중학교, 특목고, 명문대학의 약칭) 코스’를 밟으려 기를 쓴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 함께 신청 대기줄에 서 있던 부모들한테 '아이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느냐?'고 물은 일이 있다. 당시 내가 기대한 대답은 '건강하게 잘 컸으면' 정도였다. 그런데 부모 10명 중 6명은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우리 애는 국제중이 단기 목표예요.'
교육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째 흔드는 취업난
그 와중에 교육 분야를 맡게 됐는데, 경제 기자로서 보기에 이건 아무리 봐도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듯했다. 영어 유치원 3년, 사립 초등학교 6년이면 적어도 학비로만 1억원쯤 쓰게 된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영어 유치원까지 보낸 우리 애를 어떻게 공립 초등학교에 보내?’ 하는 식이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아이를 국제중에 못 보낸 부모들은 또다시 기로에 선다. ‘사립 초등학교 나온 애를 어떻게 동네 중학교에 보내?’ 싶어서다. 이에 조기 유학을 선택하면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드는 것이다.
ⓒ연합뉴스 : 독서와 여행을 중심으로 교과·비교과의 균형을 맞춰갈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 독서와 여행을 중심으로 교과·비교과의 균형을 맞춰갈 필요가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해도 된다. 이게 경제 활성화를 돕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위 10%에 들지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믿는 분들이 이랬다간 가랑이가 찢어지기 십상이다. 한동안은 ‘2060 대 3050’이라는 신조어로 독자들을 설득하려고도 했다. 자식한테 20년 투자하면 60세까지 40년은 먹고살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30년 투자해봐야 50세까지도 보장하기 힘든 세상이니, 비합리적인 투자를 계속해봐야 노후에 쪽박만 찰 거라고. 그런데 이게 먹히지가 않았다. 누가 뭐라든 '너희들이 특목고 맛을 알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흐름이 저절로 무너지고 있다. 내 생각에 그 핵심 계기는 취업난이다. 대학 공시를 보면 ‘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취업률이 50% 안팎이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포함한 수치가 이렇다. 명문대 나오고 유학을 다녀와봐야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취업난이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앞날을 낙관할 수 없는 시대다. 이를 두고 위기라 하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얼마 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경기도 스타트업캠퍼스 초대총장 취임식에서 한 연설이 인상 깊었다. 그는 취업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고용의 종말과 저성장을 동시에 맞이한 시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65%는 현재 세상에 없는 직업을 갖게 될 전망이다. 그런 만큼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평생 몰두할 업은 공부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 경험으로부터 오는 직관'이라는 것이다.
'취업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을 교육에 대입해보면 '교과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국·영·수 시대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1990년 한국의 노령화지수(65세 이상 인구를 0~14세 유소년 수로 나눠 100을 곱한 수)는 20이었다. 노인보다 청년 수가 5배 많았다는 얘기다. 이 시기 필요한 것은 경쟁 교육이었다. 청년 수가 많으니까 서로 경쟁시켜 똘똘한 놈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2015년 노령화지수는 94이다. 노인과 청년 숫자가 비슷해졌다. 노령화지수가 100 즈음이면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리에 소질이 있으면 여기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2050년 한국의 노령화지수는 376으로 추정된다. 청년보다 노인 수가 4배 가까이 많아지는 셈이다. 이 시기는 맞춤형 교육만으로도 안 된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이 시기 필요한 것은 불이(不二) 교육이다. ‘나’와 ‘너’가 둘이 아닌 교육,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도 성공하게끔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아직 맞춤형 교육은커녕 경쟁 교육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맞춤형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과의 시대를 멈추고, 교과와 비교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적성을 찾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국·영·수 중심의 교과 교육과 달리 비교과 교육의 핵심은 체험이다. 체험에는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이 있다. 직접체험의 정수가 여행이라면 간접체험의 정수는 독서다. 독서와 여행을 중심으로 교과·비교과의 균형을 맞춰갈 필요가 있다. 문제는 가난하고 기회가 없는 아이들의 경우 비교과 영역에서의 격차가 국·영·수 격차보다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자를 그만둔 뒤엔 창업해 이런 격차를 해소할 플랫폼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교육에 대한 사고 또한 직선에서 순환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대학교 졸업-취업-정년퇴직으로 이어지던 시대는 끝났다. 미국인들은 이미 순환식 사고에 익숙하다. 고교 졸업 후 창업을 했다 나중에 필요를 느껴서 대학에 진학하고, 다시 재취업이나 창업을 하는 식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평생 해야 할 업(業)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이른바 창직(創職)이다. 이를 독려하려면 부모부터 바뀔 필요가 있다. 부모부터 장하다고 격려해줘야 아이들이 용기 있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자녀를 일찍 품에서 놓아주자는 제안도 하고 싶다. 요즘은 아이들이 성인식을 해도 자기가 성인이 됐다고 느끼질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가 자식 뒷바라지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서다. 그럴 게 아니라 자랄 때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대신 모은 돈 3000만~5000만원을 성인식 날 건네며 독립하게 해주면 어떨까. 창업을 하든 해외여행을 하든 이 돈을 쓰는 것은 자녀한테 맡기는 것이다. 결혼은 취직한 다음에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바꿀 필요가 있다. 자녀를 일찍 출가시키면 부모 부담도 줄어든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현재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분양하는 등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창업 등을 장려하는 획기적인 정책이 나와주어야 한다. 여전히 직선의 시대에 맞춰져 있는 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관료들도 순환적 시스템으로 전환할 미래 사회에 걸맞은 인프라가 무엇이고 우리가 어떤 정책을 선택해야 할지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창조 경제다. 어느 날 갑자기 푸드트럭 몇 대 갖다놨다고 창조 경제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요즘 스웨덴·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시스템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 국가는 환경이 정말로 척박하다. 그렇다 보니 개인이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회적 합의도 잘 이뤄지는 편이다. 그 결과 국민들이 높은 세금도 감수한다. 반면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 적합한 모델을 새롭게 찾아가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 정말 중요할 것 같다.
15년 기자 생활을 마감하면서 가장 보람 있게 여기는 일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루저 없는 사회-성공의 기준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한 일이다. 명문학교, 높은 연봉, 사회적 지위 등을 성공 기준으로 삼는 이상 1%를 제외한 나머지는 루저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강지원 변호사, 김준희 전 능률교육 대표 등 캠페인에 참여해준 분들이 한결같이 해준 얘기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사회적 기여를 하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의 기준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성공한 인생을 산다고 믿고 싶다.
정리·김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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