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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ne 15, 2015

[정리뉴스]박 대통령, 10년 전 노무현에 했던 ‘국가에 대한 회의’ 비판이 부메랑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산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응 능력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이번에도 무능을 여실히 드러냈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안전에 대한 안일한 인식 등이 그 근거다. 정부는 ‘메르스 방역’에도 국민의 ‘불안 해소’에도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 10일 미국 방문을 나흘 앞두고 방미를 전격 연기했다. 청와대의 무관심과 늑장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결정타다.

정부의 무능이 도드라진 지금, 박 대통령이 10년 전 노무현 정부를 공격했던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라는 비판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해석하는 ‘박근혜 번역기’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등장했다. 페이지의 문패는 박 대통령의 지난 대선 슬로건인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패러디한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이다. 

‘국가는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부터 현재까지 ‘박근혜식 어법’을 살펴봤다.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2004년 7월2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을 두고 노무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가가 가장 기본적 임무인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자국민이 실종된 지 20여일이 지나도록 정부는 상황 파악조차 못했고, 외교부는 AP통신의 실종 문의마저 묵살했다”며 “김씨 주검이 발견된 시각에 대통령은 외교부에서 ‘희망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고 질타했다.

2004년 7월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우철훈 기자


박 대통령은 2007년 12월12일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사고 당시에는 “마음이 아프다. 배 한 척의 실수로 온 바다가 오염되는 것을 보며 정치가 잘못되면 온 나라가 재난에 빠지고 국민이 희망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고도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와 정치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취임 당시 “그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과 대통령 취임 이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주요 아젠다로 제시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11월19일 ‘비전 선포식’에서 “범죄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국민 안심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201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선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그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정부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같은 해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정부는 지난 9개월간 우리나라의 우수한 IT(정보기술)를 재난안전관리 분야에 접목하는 등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 왔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대통령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메르스 사태 초기 “초기 대응에 미흡”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초기 대응에 미흡했다”며 메르스 사태를 처음 언급했다. 지난달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후 12일 만이다.

박 대통령이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 문제를 지적한 1일은 첫 사망자(57·여성)가 나오고 격리자가 682명으로 급증해 ‘메르스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한 날이다. 2일 3차 감염의 저지선이 뚫린 후 청와대에는 긴급대책반이 편성됐고, 박 대통령은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개정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등 현안과 관련된 발언을 하고 있다(오른쪽).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참석자들의 비판을 들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왼쪽). 강윤중 기자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는 메르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최초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5번째 2차 감염자가 나오고, 의심환자가 중국에 출장 가는 것을 보건당국이 모르고 놓친 날이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 발언은 황교안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 당부와 정치개혁 등에 맞춰졌다.

■박원순 대응에 “독자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 혼란 초래”

청와대와 정부의 정보 독점과 부실한 초기 대응으로 피해가 확산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삶을 지키는 길에 서울시가 직접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1500여명의 불특정 다수와 접촉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이동동선 등 중앙정부가 공개하고 있지 않은 정보도 빠른 시간 내 공개하겠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밤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메르스 관련 긴급 브리핑을 갖고 있다. 서성일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두고 5일 “혼란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립중앙의료원 메르스 대책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앙방역대책본부로 창구를 일원화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자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일 메르스 환자 격리와 치료 시설이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 격리병실 앞에서 의료진에게 진료 상황 등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정부는 (메르스 감염환자를) 접촉한 분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유언비어와 SNS상의 사실과 다른 내용들에 대해서도 대응해 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지난 8일에는 “이번주 기간 동안 모든 방역 역량을 총력 투입하여 ‘메르스’ 확산세를 잡겠다는 각오로 총력 대응해 달라”면서 “모든 부처를 지시 감독하고, 국민들과 함께 협조하면서 (수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서울청사에 설치된 ‘메르스 대책 지원본부’ 상황실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메르스 발생 16일 만인 지난 5일 국립중앙의료원 방문에 이어 3일 만에 두 번째 메르스 현장을 찾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감염경로 파악’, ‘연결고리 단절’, ‘추가 접촉 차단’을 강조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방역대책 본부에서 전문가들이 전권을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들에 대해 자제 부탁”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자극적인 발언,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들에 대해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면서 “메르스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은 정상적인 해외 활동까지 영향을 미치고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우리 경제를 잠식하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어제 메르스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응원하기 위해 동대문 상가를 방문했는데 많은 어려움을 말씀하시면서도 오히려 저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분들을 보면서 우리 국민 마음에서 희망을 봤다“며 ”그런 희망을 담은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어제 선물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14일 오후 박근혜대통령은 메르스여파로 영향을 받고 있는 상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동대문상가를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당초 방미 출발 예정일이었던 지난 14일에는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격리병실 안에서 환자를 진료 중인 간호사와 화상대화를 갖고 “완쾌돼서 퇴원하는 분들도 자꾸 늘어나고 해서 이것이 바로 이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번째 메르스 현장 방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동대문 밀리오레를 방문해 “사람들이 아예 안 나온다”는 상인들의 하소연을 듣고 “곧 회복될 것이다. 그 명성이 어디로 가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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