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부터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메르스(중동호흡기성증후군)가 가라앉기는커녕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국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6월 15일에는 4차 감염자가 2명에서 5명으로 늘어, 어디에서 대량 감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15일 발표한 집계 결과를 보면 메르스 확진자는 150명, 사망자는 16명이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격리자는 무려 5216명이나 된다.
그런데도 ‘준전시’처럼 심각한 이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 박근혜는 진중하게 해결책을 찾는 작업에 몰두하기보다는 자기 ‘낯 내기’에 더 열심이다. 그가 14일 ‘메르스 대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동대문상가를 방문한 뒤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사람은 현장에서 박근혜를 만난 사람들이 마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라도 본 듯이 열광했다는 내용의 ‘서면브리핑’ 내용을 언론에 보냈다.
“오늘 방문한 밀레오레에는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진짜 박근혜 대통령 맞아? 대박!!’ ‘대통령 힘 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탓에 근접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서면브리핑’만 보면 박근혜는 적어도 동대문 상가에서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아이돌’ 같은 ‘우상적 존재’이다. 국민들은 메르스에 감염될까봐 전전긍긍하는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초동 대처’를 전혀 하지도 못한 대통령이 그렇게 열광적 환대를 받다니, 이 무슨 질 낮은 코미디인가?
지난 12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가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33%, ‘잘못하고 있다’는 58%로 나타났다. 그의 주요 지지층인 50대에서도 한 주 전보다 11%나 떨어진 39%로 드러났다. 부산, 경남, 울산을 빼면 나라 안 어디에서도 박근혜는 이미 ‘레임덕’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의 레임덕은 차라리 과분하다. 얼마 전에 이동걸(동국대 초빙교수)이 사용한 ‘데드 덕(죽은 오리)’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지금 박근혜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가 외국을 방문해서 흔히 그렇게 하듯이, 메르스 관련 병원들이나 지역을 찾아가서 활짝 웃는다고 무슨 해결책이 나오겠는가?
페이스북 박근혜 번역기. | ||
요즈음 <페이스북>에서는 ‘박근혜 번역기’가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5일 개설된 이 소프트웨어의 문패는 ‘ㅂㄱㅎ-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이다. 박근혜가 공개적으로 한 말이 어법에도 맞지 않고 뜻도 분명하지 않은 것을 바르게 ‘번역’해서 전달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보기를 하나만 들어보기로 하자.
“그리고 메르스 환자들의 치료, 또 그 환자들이 있는 시설에 대해서 격리시설이 이런 식으로 가서 되느냐, 이 상황에 대해서도 한 번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고, 치료환자들과 접촉 가족 및 메르스 환자 가능성이 있는 그런 인원에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방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또 3차 감염 환자들에 대한 대책, 그리고 지금의 상황, 그리고 접촉 의료기관 상황과 의료진 접촉 환자 및 그 가족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가 확실하게 이번에 알아봐야 되겠다.”(박근혜, 6월 2일 대통령 주재 첫 긴급회의에서)
“현재 메르스 환자들의 치료와 격리시설에 미흡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철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르스 환자 가족들과 3차 감염 환자들, 그리고 확진이 일어난 의료기관과 의료진에 대한 대책방안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봐야 합니다.”(‘박근혜 번역기’)
박근혜는 1994년 6월에 ‘수필가’로 한국문인협회에 가입했다. 그는 2007년 대통령선거 직전인 7월에 한나라당 경선후보로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펴냈다. 그 밖의 저서로는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내 마음의 여정>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 <나의 어머니 육영수>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는 그의 이런 ‘문필활동’을 근거로 수필 분야 ‘우수회원’으로 천거하기도 했다. 그런 전문가가 어떻게 공식석상에서 말을 할 때는 기본적 문법도 지키지 못하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나는 ‘메르스 대란’뿐 아니라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중대한 여러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 때문에도 박근혜가 더 이상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첫째, 지금 전국이 몇 십년 만에 처음 겪는 가뭄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식수 공급마저 끊길까봐 국민들은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명박이 ‘건국 이래 최대 공사’라고 호들갑을 떨며 강행한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댐에 가둬둔 물이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있다면 박근혜는 마땅히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박근혜는 철저한 레임덕이다.
둘째, ‘비리 종합세트’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데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한 황교안을 총리로 임명하려는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공안총리’가 지금의 빈 자리를 채운다고 해서 메르스 대란이나 가뭄이 해결될 수 있겠는가?
셋째, 지난 5월 28일 주한미군사령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 군 연구소가 실수로 살아 있는 탄저균을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로 배송해 요원 22명이 균에 노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세계 63개국에 865개 군사기지를 두고, 156개국에 25만여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이 왜 오직 오산기지에만 탄저균을 보냈을까? 그것은 단순한 ‘실수’였을까? 한 포대만 한반도 상공에 뿌려도 3백만여명이 즉사할 수 있다는 끔찍한 탄저균이 한국에 반입되었다면, 대통령은 당연히 국회와 함께 대책을 협의하고 미국 정부에 엄중히 항의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박근혜는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임기 말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킨다면 나라와 겨레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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