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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28, 2015

6·25전란 중 이승만 정부 6만명, 일본에 망명시도 확인 의료시설과 위생시설, 식량지원 등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돼


6·25전란 중 이승만 정부 6만명, 일본에 망명시도 확인
의료시설과 위생시설, 식량지원 등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돼
 
이성민 기자 

[플러스코리아타임즈=이성민 기자] 1950년 민족상잔인 6·25전란이 터지자마자 이틀 후 이승만 정부는 6만명에 대해 일본에 망명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 요청설은 KBS 취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KBS는 1950년 7월 7일 미국 공문서보관소의 `미 군정 문서'에서도 같은 증거가 나왔다고 보도하며 “이승만 정부, 전쟁 통에 망명 시도 문서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문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생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야마구치 현의 역사를 기록한 ‘야마구치 현사’에는 “한국 정부가 6만 명의 망명정권을 야마구치 현에 세우고 싶어한다”는 기록이 있다. 외무성으로부터 받은 전보였다.

이에 대해 다나카 타쓰오 야마구치 현 지사는 식량 문제를 이유로 한국인 망명 수용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또 미군정 비밀문서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들어 있다며, “KBS 도쿄지국이 확인한 결과 1950년 7월 7일 미국 공문서보관소의 `미 군정 문서'에서도 같은 증거가 나왔다. `비상 조치 계획'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망명을 위한 피난 캠프와 마을 등 구체적 계획이 적혀 있다”고 밝혔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했고 대통령인 이승만은 서울이 점령당하기도 전 일본에 6만명 규모의 망명을 타진했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 된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망명 시도는 어떻게 됐을까. 다나카 야마구치 현 지사는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미국 공문서보관소의 ‘미 군정 문서’를 보면 이 작전이 상당히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7월 7일, 야마구치 현의 다나카 지사는 일본 츄고쿠 지역 5개 현 지사 회의에서 ‘한국인 5만 명 수용 계획을 발표했다. 영문으로 된 ‘비상조치 계획’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담겨있다.

야마구치 현 아부 등 4개 자치단체에 20개의 피난 캠프와 마을을 만들고 막사마다 200명 씩, 총 250개 막사에 5만 명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병실 등 의료시설과 위생시설, 식량지원 등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계획했던 ‘한국인 피난 캠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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