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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rch 28, 2015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푸대접한 한국…미국이라면?

'가벼운' 기록, '무거운' 기록

"남북한 정상회담 회의록은 '증권가 찌라시'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 머리말 첫 페이지에 나오는 말이다. 이흥환의 책 <대통령의 욕조>(삼인, 2015년 1월 펴냄)에는 날카롭고 방향성이 명확한 지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미국 국가 아카이브(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를 열정과 전문성으로 대면해 온 그가 내뱉은 애정 어린 '독설'들이다. 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전문가나 일반 시민들이 사건이나 나라의 꼴을 해석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해주기에도 충분하다. 책 뒷부분에 나오는 NARA 소장 한국 관련 기록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정치사적으로 의미 있는 '무거운' 기록뿐만 아니라 "아들 장가보낸 집의 식량 사정"이나 "어느 인민군의 알루빰(앨범)"처럼 '가벼운' 기록들도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권력이나 정치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실존에 의해서도 만들어짐을 말하고 싶었을까? 여하튼 저자의 시선은 광범위하면서도 집중되어 있고 예리하면서도 부드럽다. 이것이 서평자가 느낀 이 책의 색깔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아 보인다. 첫 글에서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의 욕조 관련 기록을 소개하면서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키 180센티에 몸무게 150킬로그램의 거구였던 태프트 대통령을 위해 특수 제작된 욕조에 대한 소소한 기록. 미국 군함 노스캐롤라이나 호의 함장이었던 마샬이 215×104센티미터에 무게 1톤짜리 초대형 욕조를 배에 준비하라는 메모가 지금도 아카이브에 남아 있다 한다. NARA는 독립선언서나 헌법, 권리장전과 같은 '큰' 기록도 보관하지만 태프트의 욕조에 대한 기록처럼 '작은' 기록도 중시한다. 왜일까? 미국 지도자들은 기록의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버리기 일쑤고 있어도 감추는 슬픈 우리 현실을 저자는 미국과 제대로 대비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을 꼬집으며 미국처럼 능수능란하게 '통치'하고 있지조차 못한 어리석은 권력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보존과 공개의 '지혜' 

ⓒ삼인
입장료? 그런 것 없다는 그의 소개 역시 재미있다. 돈을 내라니? 미국에서는 큰일 난다. 정부의 기록은 공공의 재산이고 국민의 것이다. 내 창고에 가서 내 기록을 보겠다는데 돈을 내라니 미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당연하고 명백한 관점을 우리는 왜 세우지 못하고 있을까? 전문용어로 설명하자면 설명책임성(accountability)에 대해 정부도, 국민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위임 받아 나라를 경영하는 정부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위임자인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설명은, 한 일에 대해 기록을 남겨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실행된다. 따라서 정부가 한 일을 설명할 기록을 버리는 것도 잘못이고 공개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기본이 안되어 있는 나라에 사는 셈이다.

저자는 미국 지도자들의 기록에 대한 '지혜'를 종합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대한 대리석 조형물이나 화려한 청동상 대신 돌보다 가볍고 청동보다 약한 종이를 영구적인 국가 기념물로 택했다. (…) 문서고에 가둬놓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풀어놓는 편이 더 안전하고 힘이 강해진다는, 아무나 깨닫기 힘든 기록물의 비밀스러운 속성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보존과 공개의 '지혜', 그것이 미국의 기록 현실을 만들어 낸 열쇄이다. 

다원주의를 지키려는 미국 제도의 특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기록은 바로 국가 아카이브로 가지 않는다. 연방정부에서 만들어진 모든 기록은 메릴랜드 주 수틀랜드의 워싱턴 국립기록센터로 먼저 옮겨진다. 각 행정기관은 이 기록센터를 통해 쉽게 자신들의 기록을 이용할 수 있다. 군사 관련 기록들 중 많은 부분은 국가 아카이브가 아니라 미국 육군군사연구소(USAMHI, US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로 보내진다. 미국의 기록 관리 체계가 국가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제도화되어 있지만, 국가 아카이브의 배타적, 독점적 권한보다는 다원적 기능의 병존을 허용하는 체제임을 저자는 지적한다. 2000년부터 체계를 갖추기 온 우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의 배타적인 권한만 너무 키워놓았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에서 보았듯이 정치적 중립성이나 고도의 전문성도 없으면서 말이다. 

'국가의 기록 책임'을 달성하는 길 

2003년 국가안보보좌관이 공문서를 훔친 샌디버거 사건, 2010년 아카이브 퇴직 간부 웨슬리 와펜이 955점의 기록을 훔쳐 경매 사이트에서 판 사건은 미국 기록 관리의 허와 실을 보여준다. 사학자 매튜 에이드가 작성·발표한 '거꾸로 가는 비밀 해제(Declassification in Reverse)'라는 대국민 보고서 역시 인상적이다. 그는, 1995년 빌 클린턴이 비밀 기록들을 대량 해제·공개하였지만, 이후 이를 다시 비밀로 묶어버리는 일이 연방정부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가감 없이 폭로하였다. 미국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는 저자의 의도가 읽힌다. 그렇다고 미국의 기록 관리 제도가 허술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역방향의 도전을 정부와 기록 전문가들이 나서서 막아냄으로써 '국가의 기록 책임'을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튜 에이드처럼 말이다. 역방향의 도전으로만 점철된 우리의 기록 관리 현실에서는 아쉽게도 정부와 전문가의 역할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이 이러한 성과를 쉽게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사학자들, 아키비스트들이 나서서 NARA의 독립을 외쳤고 <뉴욕타임스> 등의 주요 언론사가 이에 동조하였다. 1984년에 이르러 연방의회는 총무청 산하 조직이었던 NARA를 독립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였고 1985년 4월 1일 드디어 NARA는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독립하였다. 참여정부 때 국가기록원의 독립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등 공공기관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우리는 행정자치부 소속 기관에 불과한 국가 아카이브를 가진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 후과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이나 청와대 정보보고 기록 유출 사건을 낳았다. '국가의 기록 책임'은 점점 요원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대통령 기념도서관 비판 

미국 기록 관리에서 특이한 존재가 바로 대통령 기념도서관이다. 일부 한국 학자들은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방문하고 돌아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분위기에 편승하여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이미 개관하였고, 상도동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준공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좀 다르다. 한 해에 2000만 달러가 넘는 예산이 대통령 기념도서관에 들어가고 있다.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가 쌓여가는 마당에 과연 이대로 둬야 마땅한 일이냐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대통령 치켜세우기의 기도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따끔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작품이다. 루스벨트는 1940년 7월 고향인 뉴욕 하이드 파크에 모금을 통해 도서관을 짓고 건립 이후에는 NARA가 이를 운영하게 한다는 구상을 실현하였다. 1955년에는 의회가 대통령 도서관법을 제정하여, 도서관 건물은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짓고(privately erected), 도서관 운영은 연방정부가 맡는다(federally maintained)는 시스템을 확정한다. 이후 트루먼 등이 도서관을 지었고, 레이건은 대통령 기록을 비행기로 운송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클린턴은 한술 더 떠서 공군 수송기 C-5를 동원하여 아칸소 주 리틀록 공군기지를 거쳐 무려 835톤의 대통령 기록을 기념도서관에 넣었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소개 뒤에는 저자의 비아냥거림이 숨어 있다. 양적·질적으로 훌륭한 기록들 그리고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수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덕에 미국의 대통령 기념도서관들은 지금도 호황이다. 하지만 그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국의 대통령 문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곱씹어 볼 대목이다. 부화뇌동하는 우리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눈먼' 한국인들 

미국의 기록 관리 제도나 기록 그 자체를 대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저자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최초 공개, 독점 발굴, 단독 입수? 이런 저급한 표현들을 우리 언론계나 학계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최초로, 독점적으로, 단독으로' 문서를 찾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찾아냈다"거나 "문서에 따르면"이라고 표현하는 정도이다. 저자는 요란하게 떠드는 한국인들이 본 기록들이 대부분 '편식' 수준임을 정확히 지적한다. 저자는 과연 그런 한국인들이 전문(Telegram), 항공송달문(Airgram), 발송공문(dispatch), 비망록(Memorandum), 공식 서신(official letter), 사신(information letter) 등을 제대로 구분하는지, 긴급(Immediate), 우선(Priority), 일반(Routine) 등의 미국식 발송문 서식에 대해 알고는 있는지에 대해 직설적으로 묻는다.

미국 기록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NARA 소장 한국 관련 기록 전체에 대한 조망을 가진 상태에서 기록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그리하면 "내 자식 먹일 쌀, 쥐새끼가 다 먹는다"는 빨간색 한글 표어가 선명한 1960년대 초 쥐잡기 계몽 포스터도 눈에 들어올 것이고, 재무부 일반 기록군에 포함되어 있는 현대시멘트와 한국나일론, 부산과 군산 열병합 발전소 등 사기업과 관련된 기록들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록들은 한국인 열람자한테 그리 귀한 대접을 받는 것들이 아니다. '1년 보고 나면 다 봤다고 하고, 2년 보고 나면 다 가져갔다고 하고, 3년 보고 나면 나머지는 다 쓰레기라고 한다'는 말이 왜 유독 한국인 열람자들 사이에서만 돌아다니는지 한 번쯤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충고이다.

한국인들이 기록에만 '눈먼'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 역사, 우리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 NARA나 대통령 기념도서관들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도대체 우리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RG(Record Group) 242' 또는 '노획 문서(seized documents)'라 불리는 기록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이유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독일은 1975년부터 2년에 걸친 집중적인 수집 작업을 통해 독일 관련 기록 전체의 75퍼센트를 가져갔다. 이탈리아는 15년간 수집 작업을 진행하였고, 일본은 1978년 소수의 전문가를 파견하여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물론 기록을 열람하는 일은 모두 자국에서 이뤄진다. 유독 한국인들만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NARA를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최초, 단독, 독점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더 큰 것에는 더더욱 '눈먼' 상태이다. 이제 눈을 떠야 한다는 메시지를 저자는 이 책 군데군데에 담고 있다. 미국이 왜 한국 관련 기록들을 그렇게 방대하면서도 세세한 수준까지 보존하고 있는지, 도대체 그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그런 시스템을 갖추게 된 동력은 무엇인지를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기록 제도가 무엇에 복무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국가의 기록 책임'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져야 할 과제임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미국에게 배우고 또 미국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고, 우리다운 '지혜'를 촉구하는 책이 바로 이흥환의 <대통령의 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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