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백.
최근 몇 주간 김연명 중앙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의 모습은 이 말에 딱 들어맞습니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놓고서 여야 합의 후에 불거진 국민 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 논쟁에서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물론이고 청와대와 말 그대로 혼자서 '맞짱'을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청와대 대변인 등 권력자들이 한마디 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은 물론이고 언론도 김연명 교수의 입만 쳐다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 뒤에는 정교한 데이터와 깔끔한 논리로 무장한 김 교수의 반론이 이어집니다. 교수 개인의 보도 자료를 이토록 기다려본 것은 짧지 않은 기자 생활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이 정작 본인에게는 반가울 리 없습니다. 1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연명 교수는 안쓰러울 정도로 지쳐보였습니다. "다들 내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 작은 실수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정부 논리를 분석하고 반박 자료를 만드느라 밤을 새는 일이 다반사라는 하소연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김연명 교수는 다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기금 고갈" "세금 폭탄" 등의 프레임으로 국민 연금에 대한 시민의 불신을 조장하는 세태에 대한 반론이 조목조목 이어졌습니다. <프레시안>은 '대한민국 복지의 미래를 둘러싼 이번 논쟁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절절히 녹아 있는 김 교수의 목소리를 세 번에 걸쳐서 기사로 전합니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이 빚어낸 그의 목소리를 지금 들어보십시오. 이 인터뷰는 강양구 편집부국장이 진행하고, 김윤나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사적 연금, 7년 뒤 해약할 확률 66.8%…마이너스 수익
프레시안 : 국민 연금을 둘러싼 시민의 불신이 큽니다. '노후는 내가 알아서 보장하면 되는데, 왜 굳이 강제로 국민 연금에 가입해야 하지?', '제대로 못 받는 거 아니야?' 이런 우려가 큽니다. 게다가 많은 시민이 국민 연금을 자신이 낸 만큼 돌려받는 '연금 저축(사적 연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 연금과 사적 연금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김연명 : 국민 연금은 그 어떤 개인 연금(사적 연금)이나 은행 적금보다 확실한 노후 소득 대책이에요. 요즘 은행에 돈을 넣으면 (물가 상승률 때문에) 실질 이자율이 0원이지요? 국민 연금은 실질 이자율이 얼마일 것 같으세요?
초기 국민 연금 소득 대체율 70%를 적용받았던 어르신들의 실질 이자율이 무려 29.8%였어요. 거의 사채 이자 수준이었죠. 소득 대체율이 40%까지 떨어진 지금도 1990년생(현재 만 25세)이 국민 연금에 가입했을 때 얻는 실질 이자율이 6.5%예요. 지금 시중 어느 금융 상품이 이자율 6.5%를 보장하나요?
반면에 개인 연금 실질 이자율은 투자 수익률에 결정되는데요. 수익을 잘 내도 실질 이자율이 평균 1%가 안 됩니다. 심지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기도 하죠.
프레시안 : 6.5%와 1% 미만이면 차이가 크네요. 그렇더라도 개인 연금은 운용 실적이 좋으면 수익률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요?
김연명 : 그렇게 착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설사 개인 연금이 수익률을 잘 냈다고 하더라도 가입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여기서 '강제 가입'인 국민 연금과 '자율 가입'인 사보험의 차이가 나오는데요.
보험 상품에 가입한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주변에 10년 넘게 유지한 사람이 많나요? 개인 연금 가입자들의 60~70%가 만기를 못 채우고 중간에 해지합니다. 중간에 해약하면 어떻게 되나요? 원금도 못 돌려받죠. 그러니 실제 수익은 마이너스 20%대 이상일 겁니다. 실질 이자율을 따지면 개인 연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마이너스예요.
실제로 1994년에 개인 연금이 처음 판매됐을 당시 개인 연금에 400만 명 이상이 가입했는데, 7년 뒤 유지율이 고작 33.2%였어요. 100명 중 67명이 7년 안에 다 해약했어요. 2000년도에 판매된 연금 저축도 해약률이 비슷합니다. 해약률을 고려하면 가입자의 수익률은 처참한 마이너스인 셈이지요.
개인 연금 40 줄 때, 국민 연금은 100을 준다
프레시안 : 젊은 사람이 노후에 대비해 개인 연금을 30년씩 붓기가 쉽지 않으니, 국가가 강제로 가입시켜 노후 대비를 시켜주는 셈이네요. 그것도 100을 주면 180을 돌려주는 식으로요.
김연명 : 그렇죠. 그런데 더 결정적인 차이는 개인 연금과는 달리, 국민 연금 수급액이 물가에 연동해 오른다는 점이에요.
똑같은 100만 원을 주기로 한 국민 연금과 개인 연금 상품이 있다고 해 봅시다. 개인 연금 상품이 주기로 한 100만 원은 죽을 때까지 그냥 100만 원이에요. 그런데 100만 원의 실질 가치는 물가 상승률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집니다. 반면에 국민 연금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서 연금을 지급할 당시의 '미래 시가'로 줍니다. 물가 상승률을 3%만 가정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받기로 한 돈이 쭉 올라가요.
이런 식으로 개인 연금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수십 년 뒤 실질 가치가 국민 연금의 30~40%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즉, 국민 연금이 100을 주면, 사적 연금은 아무리 많이 줘도 40을 줍니다.
(일례로 30년 전 자장면 한 그릇이 600원이었다. 지금은 자장면 한 그릇이 5000원가량 한다. 30년 새 물가가 몇 배 뛰었다. 이를 뒤집어 적용하면, 사적 연금을 통해 받기로 한 100만 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 100만 원보다 가치가 떨어진다.
최근 몇 주간 김연명 중앙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의 모습은 이 말에 딱 들어맞습니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놓고서 여야 합의 후에 불거진 국민 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 논쟁에서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물론이고 청와대와 말 그대로 혼자서 '맞짱'을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청와대 대변인 등 권력자들이 한마디 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은 물론이고 언론도 김연명 교수의 입만 쳐다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 뒤에는 정교한 데이터와 깔끔한 논리로 무장한 김 교수의 반론이 이어집니다. 교수 개인의 보도 자료를 이토록 기다려본 것은 짧지 않은 기자 생활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이 정작 본인에게는 반가울 리 없습니다. 1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연명 교수는 안쓰러울 정도로 지쳐보였습니다. "다들 내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 작은 실수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정부 논리를 분석하고 반박 자료를 만드느라 밤을 새는 일이 다반사라는 하소연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김연명 교수는 다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기금 고갈" "세금 폭탄" 등의 프레임으로 국민 연금에 대한 시민의 불신을 조장하는 세태에 대한 반론이 조목조목 이어졌습니다. <프레시안>은 '대한민국 복지의 미래를 둘러싼 이번 논쟁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절절히 녹아 있는 김 교수의 목소리를 세 번에 걸쳐서 기사로 전합니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이 빚어낸 그의 목소리를 지금 들어보십시오. 이 인터뷰는 강양구 편집부국장이 진행하고, 김윤나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사적 연금, 7년 뒤 해약할 확률 66.8%…마이너스 수익
프레시안 : 국민 연금을 둘러싼 시민의 불신이 큽니다. '노후는 내가 알아서 보장하면 되는데, 왜 굳이 강제로 국민 연금에 가입해야 하지?', '제대로 못 받는 거 아니야?' 이런 우려가 큽니다. 게다가 많은 시민이 국민 연금을 자신이 낸 만큼 돌려받는 '연금 저축(사적 연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 연금과 사적 연금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김연명 : 국민 연금은 그 어떤 개인 연금(사적 연금)이나 은행 적금보다 확실한 노후 소득 대책이에요. 요즘 은행에 돈을 넣으면 (물가 상승률 때문에) 실질 이자율이 0원이지요? 국민 연금은 실질 이자율이 얼마일 것 같으세요?
초기 국민 연금 소득 대체율 70%를 적용받았던 어르신들의 실질 이자율이 무려 29.8%였어요. 거의 사채 이자 수준이었죠. 소득 대체율이 40%까지 떨어진 지금도 1990년생(현재 만 25세)이 국민 연금에 가입했을 때 얻는 실질 이자율이 6.5%예요. 지금 시중 어느 금융 상품이 이자율 6.5%를 보장하나요?
반면에 개인 연금 실질 이자율은 투자 수익률에 결정되는데요. 수익을 잘 내도 실질 이자율이 평균 1%가 안 됩니다. 심지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기도 하죠.
프레시안 : 6.5%와 1% 미만이면 차이가 크네요. 그렇더라도 개인 연금은 운용 실적이 좋으면 수익률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요?
김연명 : 그렇게 착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설사 개인 연금이 수익률을 잘 냈다고 하더라도 가입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여기서 '강제 가입'인 국민 연금과 '자율 가입'인 사보험의 차이가 나오는데요.
보험 상품에 가입한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주변에 10년 넘게 유지한 사람이 많나요? 개인 연금 가입자들의 60~70%가 만기를 못 채우고 중간에 해지합니다. 중간에 해약하면 어떻게 되나요? 원금도 못 돌려받죠. 그러니 실제 수익은 마이너스 20%대 이상일 겁니다. 실질 이자율을 따지면 개인 연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마이너스예요.
실제로 1994년에 개인 연금이 처음 판매됐을 당시 개인 연금에 400만 명 이상이 가입했는데, 7년 뒤 유지율이 고작 33.2%였어요. 100명 중 67명이 7년 안에 다 해약했어요. 2000년도에 판매된 연금 저축도 해약률이 비슷합니다. 해약률을 고려하면 가입자의 수익률은 처참한 마이너스인 셈이지요.
프레시안 : 젊은 사람이 노후에 대비해 개인 연금을 30년씩 붓기가 쉽지 않으니, 국가가 강제로 가입시켜 노후 대비를 시켜주는 셈이네요. 그것도 100을 주면 180을 돌려주는 식으로요.
김연명 : 그렇죠. 그런데 더 결정적인 차이는 개인 연금과는 달리, 국민 연금 수급액이 물가에 연동해 오른다는 점이에요.
똑같은 100만 원을 주기로 한 국민 연금과 개인 연금 상품이 있다고 해 봅시다. 개인 연금 상품이 주기로 한 100만 원은 죽을 때까지 그냥 100만 원이에요. 그런데 100만 원의 실질 가치는 물가 상승률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집니다. 반면에 국민 연금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서 연금을 지급할 당시의 '미래 시가'로 줍니다. 물가 상승률을 3%만 가정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받기로 한 돈이 쭉 올라가요.
이런 식으로 개인 연금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수십 년 뒤 실질 가치가 국민 연금의 30~40%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즉, 국민 연금이 100을 주면, 사적 연금은 아무리 많이 줘도 40을 줍니다.
(일례로 30년 전 자장면 한 그릇이 600원이었다. 지금은 자장면 한 그릇이 5000원가량 한다. 30년 새 물가가 몇 배 뛰었다. 이를 뒤집어 적용하면, 사적 연금을 통해 받기로 한 100만 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 100만 원보다 가치가 떨어진다.
사적 연금과 마찬가지로 30년 뒤 똑같은 100만 원을 주기로 한 국민 연금은 어떻게 될까? 물가 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면, 국민 연금은 1년 뒤 103만 원을 주고, 2년 뒤에는 103만 원의 3%를 더 준다. 이런 식으로 30년 뒤에 100만 원이 242만 원[100만 원 X 1.03의 30제곱]이 된다. 다시 말해 국민 연금은 2015년 '현재 시가' 10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을 2045년 '미래 시가' 242만 원으로 준다. 세상에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서 '미래 시가'로 주는 사적 연금은 없다.)
프레시안 :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적 연금 수익이 반 토막이 나는 것이네요.
김연명 : 게다가 똑같은 100만 원을 받기 위해 내야 하는 보험료는 국민 연금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요. 이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제도로 설계된 이유는 국민 연금이 이윤 창출이 목적인 사적 연금이 아니라, 그 목적이 '노후 소득 보장'에 있는 공적 연금이기 때문입니다.
연금 교과서를 보면 "사적 연금이 있는데, 왜 굳이 강제 연금인 국민 연금을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와요. 교과서는 이렇게 답합니다. "사보험에는 인플레이션 대처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사보험의 가장 큰 약점은 첫째, 해약률이 높아서 실질 이자율이 마이너스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둘째, 설사 완벽하게 운용사가 시장에서 투자 수익률을 높였다고 가정해도 인플레이션 대응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사보험과 공보험이 노후 소득 보장에서 차지하는 결정적인 차이죠.
독일은 7일치만 적립…'기금 고갈'은 공포 마케팅
프레시안 : 국민 연금이 뛰어난 노후 소득 보장 대책이라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국민 연금 수익률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국민 연금 기금이 언젠가 고갈되면 노후에 연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이른바 '기금 고갈' 공포죠.
김연명 : 국민 연금 제도를 시민이 안 믿는 이유의 핵심이 '기금 고갈' 공포예요. 기금 고갈 프레임을 깨지 않으면 국민연금에 대한 진보적인 개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사 국민 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연금을 못 받는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유럽 대부분 나라는 이미 기금이 고갈돼서 없는데도 연금 제도가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볼까요? 독일은 GDP의 11%를 연금 지급액으로 매년 지출하는데, 불과 일주일치 기금밖에 안 쌓아 두고 있어요. 기금 규모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인 일본도 불과 5년치 적립금만 쌓아두고 있는데 "5년 뒤 기금 고갈"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일주일치면 사실상 적립을 안 해두는 셈인데요. 그래도 연금 지급에 문제가 없나요?
김연명 : 당연하죠. 연금 지급은 국가가 국민에게 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독일은 매달 젊은 세대에게 보험료와 세금을 걷어서 곧바로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합니다. 국민 연금이 '세대 간 연대'의 원리로 운영되기 때문이죠.
국민 연금 기금은 무조건 많이 쌓아야 한다고 오해를 하는데, 한국처럼 적립금을 많이 쌓고 있는 나라는 유례가 없어요. 한국처럼 큰 규모로 기금을 쌓는 나라는 한국을 빼고 전 세계에 미국, 일본, 캐나다, 스웨덴 4개 국가밖에 없어요. 그중에서도 한국의 적립금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정부는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연명 : 2060년 기금 고갈이요? 2060년까지 적립금을 다 쓰고 싶어도 못 써요. 기금 고갈 그래프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정부는 그렇게 470조 원이나 쌓인 기금을 갑자기 고갈시킬 수가 없어요.
프레시안 : 기금 고갈이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김연명 : 2060년 이렇게 딱 시점을 못 박아 놓고 쌓아놓은 국민연금 기금을 다 쓸 수 없어요. 불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국민연금 기금은 현금으로 금고에 쌓아두는 게 아니에요. 현금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으로 재투자된 자산입니다. 노인들에게 돈을 주려면 당연히 그런 자산을 현금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갑작스럽게 현금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좀 무리한 가정이지만 예를 들어 봅시다. 국민연금공단이 1조5000억 원을 주고 사서 최근에 팔아치운 영국 런던에 있는 HSBC 빌딩 본사를 그냥 보유하고 있다가 2060년 이전에 노인에게 연금을 주려고 그 빌딩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합시다. 그게 팔리겠어요? 어느 바보가 그걸 바로 사겠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현금이 필요하니까) 헐값에 급매로 나올 텐데요.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연금 적립금이 2040년께 GDP의 50%에 달하는데, 2060년에 그 기금을 고갈시키려면 1년에 GDP의 2.5%를 현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GDP 1% 정도의 금액이 주식 시장에 매물로 갑자기 풀린다고 가정해 보세요. 한국 주식 시장이 결딴나겠죠. 아니, 한국 경제가 파탄이 날 겁니다. 그러니 기금 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못 박는 건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 시점에 고갈될 수도 없고, 고갈시킬 도리도 없습니다. 해결책은 적립금의 규모를 줄이거나 아니면 기금 고갈 시점을 훨씬 더 먼 시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쯤으로 잡아서 천천히 현금으로 만들어서 쓰는 것입니다.
"'공룡 국민 연금 기금' 연착륙시켜야"
프레시안 : 하지만 정부는 기금을 최대한 많이 쌓아서 미래 세대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고 합니다. 게다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금이 소진되는 2060년 이후에 그해 국민 연금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그해 노인에게 지급하는 방식(부과 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하던데요.
김연명 : 오해가 있어요. 저는 국민 연금 기금을 소진시켜 (그해 보험료를 걷어서 그해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인) '부과 방식'으로 빨리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기금 소진 시점을 늘려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0원을 만들려면 앞으로 100년이 걸린다고 가정해 보세요. 뒤집어서 생각해 볼까요? 우리나라처럼 큰 규모의 국민 연금 기금을 쌓지 않고(적립 방식), 젊은 세대에게 그해 걷어서 그해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 이행하는 데 100년이 걸리는 거예요. 100년 뒤에 어떻게 할지를 지금 논의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죠.
지금부터 100년 전, 우리나라는 어땠나요? 1915년에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였어요. 백성들이 전부 농사짓던 시절이에요. 1915년에 100년 뒤인 2015년의 대한민국 국민 연금 제도에 대해서 설계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코미디죠.
따라서 지금은 '부과 방식'이냐 '적립 방식'이냐 하는 논의가 의미가 없어요. 쓸데없는 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에요. 우선 국민 연금 기금을 연착륙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기금을 천천히 소진시킨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연명 : 지금 우리나라 연금 제도가 부분 적립 방식입니다. 보험료를 조금 올려서 2060년 기금이 소진되기로 했던 것을 최소한 20~30년간 혹은 더 뒤로 미뤄야 해요. 우리 세대는 그 정도만 결정하면 충분합니다. 그럼,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물론 기금을 GDP의 어느 규모로 쌓을지, 아니면 기금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최소한만 보유하고 부과 방식으로 갈지 정해야죠. 그런데 그 결정은 지금 내리는 것이 아니라 30~40년 뒤 다음 세대가 결정하도록 남겨 놓아야 합니다. 연금 기금을 연착륙하기도 전에, 기금 고갈에 대해 겁주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 마케팅'입니다. 기금 고갈은 걱정할 일도, 무서워할 일도 아닙니다. (계속)
프레시안 :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적 연금 수익이 반 토막이 나는 것이네요.
김연명 : 게다가 똑같은 100만 원을 받기 위해 내야 하는 보험료는 국민 연금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요. 이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제도로 설계된 이유는 국민 연금이 이윤 창출이 목적인 사적 연금이 아니라, 그 목적이 '노후 소득 보장'에 있는 공적 연금이기 때문입니다.
연금 교과서를 보면 "사적 연금이 있는데, 왜 굳이 강제 연금인 국민 연금을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와요. 교과서는 이렇게 답합니다. "사보험에는 인플레이션 대처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사보험의 가장 큰 약점은 첫째, 해약률이 높아서 실질 이자율이 마이너스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둘째, 설사 완벽하게 운용사가 시장에서 투자 수익률을 높였다고 가정해도 인플레이션 대응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사보험과 공보험이 노후 소득 보장에서 차지하는 결정적인 차이죠.
독일은 7일치만 적립…'기금 고갈'은 공포 마케팅
프레시안 : 국민 연금이 뛰어난 노후 소득 보장 대책이라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국민 연금 수익률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국민 연금 기금이 언젠가 고갈되면 노후에 연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이른바 '기금 고갈' 공포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사 국민 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연금을 못 받는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유럽 대부분 나라는 이미 기금이 고갈돼서 없는데도 연금 제도가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볼까요? 독일은 GDP의 11%를 연금 지급액으로 매년 지출하는데, 불과 일주일치 기금밖에 안 쌓아 두고 있어요. 기금 규모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인 일본도 불과 5년치 적립금만 쌓아두고 있는데 "5년 뒤 기금 고갈"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일주일치면 사실상 적립을 안 해두는 셈인데요. 그래도 연금 지급에 문제가 없나요?
김연명 : 당연하죠. 연금 지급은 국가가 국민에게 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독일은 매달 젊은 세대에게 보험료와 세금을 걷어서 곧바로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합니다. 국민 연금이 '세대 간 연대'의 원리로 운영되기 때문이죠.
국민 연금 기금은 무조건 많이 쌓아야 한다고 오해를 하는데, 한국처럼 적립금을 많이 쌓고 있는 나라는 유례가 없어요. 한국처럼 큰 규모로 기금을 쌓는 나라는 한국을 빼고 전 세계에 미국, 일본, 캐나다, 스웨덴 4개 국가밖에 없어요. 그중에서도 한국의 적립금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정부는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연명 : 2060년 기금 고갈이요? 2060년까지 적립금을 다 쓰고 싶어도 못 써요. 기금 고갈 그래프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 정부는 그렇게 470조 원이나 쌓인 기금을 갑자기 고갈시킬 수가 없어요.
프레시안 : 기금 고갈이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김연명 : 2060년 이렇게 딱 시점을 못 박아 놓고 쌓아놓은 국민연금 기금을 다 쓸 수 없어요. 불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국민연금 기금은 현금으로 금고에 쌓아두는 게 아니에요. 현금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으로 재투자된 자산입니다. 노인들에게 돈을 주려면 당연히 그런 자산을 현금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갑작스럽게 현금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좀 무리한 가정이지만 예를 들어 봅시다. 국민연금공단이 1조5000억 원을 주고 사서 최근에 팔아치운 영국 런던에 있는 HSBC 빌딩 본사를 그냥 보유하고 있다가 2060년 이전에 노인에게 연금을 주려고 그 빌딩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합시다. 그게 팔리겠어요? 어느 바보가 그걸 바로 사겠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현금이 필요하니까) 헐값에 급매로 나올 텐데요.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연금 적립금이 2040년께 GDP의 50%에 달하는데, 2060년에 그 기금을 고갈시키려면 1년에 GDP의 2.5%를 현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GDP 1% 정도의 금액이 주식 시장에 매물로 갑자기 풀린다고 가정해 보세요. 한국 주식 시장이 결딴나겠죠. 아니, 한국 경제가 파탄이 날 겁니다. 그러니 기금 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못 박는 건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 시점에 고갈될 수도 없고, 고갈시킬 도리도 없습니다. 해결책은 적립금의 규모를 줄이거나 아니면 기금 고갈 시점을 훨씬 더 먼 시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쯤으로 잡아서 천천히 현금으로 만들어서 쓰는 것입니다.
"'공룡 국민 연금 기금' 연착륙시켜야"
프레시안 : 하지만 정부는 기금을 최대한 많이 쌓아서 미래 세대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고 합니다. 게다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금이 소진되는 2060년 이후에 그해 국민 연금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그해 노인에게 지급하는 방식(부과 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하던데요.
김연명 : 오해가 있어요. 저는 국민 연금 기금을 소진시켜 (그해 보험료를 걷어서 그해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인) '부과 방식'으로 빨리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기금 소진 시점을 늘려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0원을 만들려면 앞으로 100년이 걸린다고 가정해 보세요. 뒤집어서 생각해 볼까요? 우리나라처럼 큰 규모의 국민 연금 기금을 쌓지 않고(적립 방식), 젊은 세대에게 그해 걷어서 그해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 이행하는 데 100년이 걸리는 거예요. 100년 뒤에 어떻게 할지를 지금 논의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죠.
지금부터 100년 전, 우리나라는 어땠나요? 1915년에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였어요. 백성들이 전부 농사짓던 시절이에요. 1915년에 100년 뒤인 2015년의 대한민국 국민 연금 제도에 대해서 설계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코미디죠.
따라서 지금은 '부과 방식'이냐 '적립 방식'이냐 하는 논의가 의미가 없어요. 쓸데없는 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에요. 우선 국민 연금 기금을 연착륙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기금을 천천히 소진시킨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연명 : 지금 우리나라 연금 제도가 부분 적립 방식입니다. 보험료를 조금 올려서 2060년 기금이 소진되기로 했던 것을 최소한 20~30년간 혹은 더 뒤로 미뤄야 해요. 우리 세대는 그 정도만 결정하면 충분합니다. 그럼,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물론 기금을 GDP의 어느 규모로 쌓을지, 아니면 기금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최소한만 보유하고 부과 방식으로 갈지 정해야죠. 그런데 그 결정은 지금 내리는 것이 아니라 30~40년 뒤 다음 세대가 결정하도록 남겨 놓아야 합니다. 연금 기금을 연착륙하기도 전에, 기금 고갈에 대해 겁주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 마케팅'입니다. 기금 고갈은 걱정할 일도, 무서워할 일도 아닙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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