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정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하는 ‘범국민 1박2일 철야행동’ 집회가 이어진 1일 밤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경찰 버스에 올라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기자들이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맞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더(The) 친절한 기자들]
기침과 재채기 계속…따가워서 눈도 못 떠
경찰, 법적 근거 없이 자의적 규정에 따라 사용
기침과 재채기 계속…따가워서 눈도 못 떠
경찰, 법적 근거 없이 자의적 규정에 따라 사용
‘쏴~ 쏴~ 쏴~’
경찰 살수차 세 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대포 소리가 우렁찼습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진행된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촉구 철야집회를 취재중이었던 저를 포함한 기자들이나 1000여명의 집회참가자들은 밤10시12분 처음 발사된 물대포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던 물대포가 10시39분부터는 9분동안 쉬지 않고 시위대를 향해 쏟아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가족 중 한 명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차벽 위의 사진기자들도, 차벽 아래의 취재기자들과 시위참가자들도 경찰이 꼼꼼하게 쏘아대는 물대포에 웅덩이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었습니다.
10시12분 첫 물대포가 발사되고 살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가 간질간질하고 잔기침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경찰이 코 앞에서 분사기로 뿌려대는 캡사이신 최루액 때문이겠거니하며 무심히 넘겼습니다. 그런데 10시39분부터 9분 동안 쏘아댄 물대포를 맞고는 이건 ‘순수한 물대포가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매캐한 느낌이 엄습하면서 기침과 재채기를 멈추기 어려웠고, 눈이 따가워 한쪽 눈을 한동안 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맨살에 직접 맞은 목덜미와 팔뚝은 불에 덴 듯 후끈거리고 따끔거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눈물, 콧물을 흘리고 기침과 재채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토와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생수로 물대포 맞은 부위를 씻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닥에 고여있는 물을 보니 우유처럼 하얀 빗깔이었습니다. 새벽에 집에 와서 샤워를 했지만 목과 팔의 따까움과 후끈거림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통증은 다음날이 돼서도 반나절 이상 지속됐습니다. 1시간20여분 동안 쏟아졌던 물대포의 정체는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였습니다. 그 ‘독성’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 ‘남녀노소에게 무차별적으로 쏴서는 안 될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최루액은 ‘파바(PAVA)’라는 합성 캡사이신의 한 종류입니다. 경찰은 2010년부터 파바를 물대포에 섞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시에스(CS)’라는 최루액을 썼습니다. 경찰은 1980년대부터 30여년동안 시에스를 물대포에 섞어 써왔는데, 발암물질 등 인체유해성 논란이 불거지자 2009년 평택 쌍용차 사태를 마지막으로 시에스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작성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파바는 “심각한 과량노출시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 피부접촉·눈의 접촉·섭취시 매우 유해. 가려움증, 수포생성을 초래” 등의 영향을 인체에 미칠 수 있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MSDS의 내용을 보면, 파바의 위험이 아직까지 모두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며 ‘매우 유해한 물질’임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지난달 19일 밝힌 바 있습니다.
경찰은 “경찰 내부지침과 규정에 따라 사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지난 1일과 지난달 18일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물대포에 섞은 파바의 농도는 0.03%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경찰이 스위스에서 수입해 오는 파바 용액의 농도가 3%라고 합니다. 이것을 1%로 물에 섞으면 0.03%가 된다는 것입니다.
경찰이 최루액 물대포를 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물대포 등 ‘위해성 경찰장비를 필요 최소한도로 사용해야 한다’고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위해성 경찰장비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 ‘경찰장비관리규칙’ ‘살수차 운용지침’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루액 물대포’에 대한 내용은 경찰이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내부 지침에 불과한 ‘살수차 운용지침’에만 나옵니다. 이 지침에서도 “불법행위자 제압에 필요한 적정 농도로 혼합”해 쏠 수 있다며 ‘모호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최루액 혼합 농도나 최루액으로 쓸 수 있는 화학약품의 종류 등에 관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경찰은 “‘0.5%, 1.0%, 1.5%’라는 상중하 기준을 갖고 사용한다”고 합니다.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이 셋 중 하나의 농도로 자동으로 섞어주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내부 ‘지침’보다 더 하위 단계인 경찰청이 지방청이나 일선서에 내려보내는 ‘공문’에 나오는 내용일뿐입니다. 요컨대, 경찰의 최루액 물대포 사용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죠.
인체에 유해한 최루액 물대포를 이처럼 관련 규정이 모호하고 자의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침에 근거해 사용하는 건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1일 집회에 참여했다 최루액 물대포를 맞고 피해를 입은 세월호 참사 가족과 시민 등 3명은 지난 6일 헌법재판소에 경찰의 자의적인 최루액 물대포 사용을 막아달라는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청구인들의 법률 대리인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최루액 물대포는 시민의 생명권, 건강권,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데 경찰은 법률적 근거없이 이를 사용하고 있어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 경찰이 임의로 기준을 변경할 수 있는 ‘지침’이 아니라 명시적인 사용 근거를 ‘법률’에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헌재는 지난해 6월 물대포 사용에 대해 “이미 발사 행위가 종료돼 기본권 침해 상황이 마무리 돼 헌법소원을 제기할 실익이 없다. 앞으로 집회 현장에서 당시처럼 근거리에서 물대포를 발사하는 행위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리 자체를 하지 않은 채 각하했습니다. 반면 김이수·서기석·이정미 재판관 3명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물대포의 반복사용이 예상된다.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으므로 법률로 이를 규정해야 한다”며 헌재에서 심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이후 헌재의 각하 이유와는 반대로 물대포가 반복적으로 사용됐고, 더구나 이번에는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가 사용돼 위해성이 더 커졌습니다. 헌재의 새로운 판단이 필요해보이는 이유입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5월 1일 경찰의 최루액 물대포 살포 장면/독자 제공>
노동절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던 노동자와 416세월호국민연대가 주최한 1박2일 행동에 참가했던 시민단체 회원, 시민들이 1일 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하자 서울 안국네거리에서 경찰이 차벽으로 가로막은 채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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