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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y 2, 2015

CJ 말레이시아공장 공사업체 부도위기 누구 책임?

CJ, 공사지체로 인한 비용 증대 “하청업체 사이의 일”이라며 외면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회장 부인까지 만나려고 했겠습니까. 제발 만나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본사를 찾아가 분신자살하는 것까지 생각했습니다.” 4월 30일, 경향신문 1층 커피숍에서 기자를 만난 백운교 KNHI 부사장의 말이다. 바로 전날, 8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한때 27명이었던 회사 직원 중 아직 남은 직원은 8명. 월급은 벌써 여러 달 밀렸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기자를 찾아왔다는 심경을 밝혔다. 함께 기자를 방문한 주기수 상무이사가 말을 받았다. “…대기업 공사였으니까요. 당연히 대금이나 이런 것은 대기업이 끼어 있으니 못 받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돈이 나왔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을 겁니다. 회사로서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이들이 공사를 하고도 돈을 못 받았다는 대기업은 어디일까. CJ다. 

이야기는 201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CJ가 배포한 보도자료가 남아 있다. “2012년 10월 7일 서울, 글로벌 그린바이오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기 위한 CJ제일제당의 행보가 가파르다. CJ제일제당은 프랑스 아르케마(Arkema)사와 손잡고 총 4억 달러 이상을 투자, 말레이시아에 사료용 아미노산인 메치오닌 8만t을 생산하는 그린바이오 공장을 건설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공장은 2013년 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예정되었던 2013년 말에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말레이시아의 메치오닌 공장이 다시 CJ의 보도자료에 등장한 것은 올해 1월이다. 본격 가동 시점이 1년 이상 늦어진 것이다. 

지난 2012년 10월 6일, 말레이시아 테렝가누에서 열린 CJ 메치오닌 공장 기공식. CJ 대표와 말레이시아 총리 등 정부 요인이 참석했다.
견실한 중소기업, 공사참여 후 도산 위기
KNHI는 대구에 소재한 회사다. 철골공사를 주로 해온 업체다. CJ의 말레이시아 공사를 맡기 전에는 순조롭게 성장했다. CJ는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세우면서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CJ Bio MALYSIA SDN.BHD라는 회사다. 말레이시아의 법규상 공사는 현지법인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CJ바이오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원도급자는 CJ E&C, 다시 말해 CJ건설이다. CJ건설은 다시 WGL이라는 중국계 현지법인에 공사의 하도급을 맡겼다. CJ는 입찰조건으로 한국산 철골자재를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WGL은 과거 중국 등지에서 한국 대기업 공사를 같이한 경험이 있는 KNHI에 재하청을 맡겼다. 공사는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CJ 측과 WGL 사이에 한국산 자재에 대해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부과하는 관세를 두고 이견이 발생했다. WGL 측은 관세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을 CJ 측에 요구했고, 그에 대해 해결해주겠다는 구두약속을 받았다고 한국의 시민단체 등에 돌린 ‘호소문’에서 주장하고 있다. 반면 CJ 측에서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었다. 바로 WGL의 하도급을 받은 한국 업체들이었다. “사실상 WGL은 페이퍼컴퍼니에 가까웠다. 이쪽에서도 돈이 돌아야 공사를 할 수 있다. 납품해야 할 제품 중 자재비가 약 60% 정도 차지한다. 1차, 2차 공사를 하는데 WGL 쪽에서 돈이 제때 들어오지 않았다. 불안했다. 우리는 CJ 쪽에 직접 관리를 요구했다.” KNHI 주기수 상무의 말이다. 바다 건너 말레이시아에서 관세문제로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은 공사 초기부터 발생한 일로 보인다. 오간 ‘서류들’을 보면 KNHI와 WGL이 계약을 한 것은 2012년 12월 15일이다. 두 회사의 계약관계에 CJ 측이 ‘개입’해 들어온 것은 한 달 뒤인 2013년 1월 22일부터다. 납품 지연을 막기 위한 검수다. KNHI 측이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항의하기 시작한 것은 3월 3일부터다. 이때의 대상은 하청업체인 WGL 쪽이었다. 이후 말레이시아와 WGL의 한국회사 KGL 사무실, CJ건설 회의실 등에서 진행된 3사(CJ건설, WGL, KNHI) 관계자 회의에서 돈 지급 문제는 계속 이슈가 된다. 

5월 31일, CJ 측 말레이시아 총괄책임자 김○○ 부장이 대구의 KNHI 사무실을 방문한다. 이날 작성된 회의록을 보면 KNHI 측이 “쓴 돈이 50억원인 데 비해 받은 돈이 13억6000만원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서 돈을 빨리 지급받도록 CJ 측에서도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CJ건설 회의실에서 진행된 회의록에도 하청업체의 자금압박은 자세하게 반영되었다. 

그리고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WGL 측은 앞서 배포한 호소문에서 “당초 계약금액(115억원)보다 25억원이 더 늘어났다. CJ 측에서 140억을 모두 받는다고 하더라도 기타 비용을 제하면 11억원이 적자 나는 상황”이라며 “적자가 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CJ와 협상에 임했으나 협상 최종단계에서 140억원 비용 지출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지급불능 상태가 된 것이다. KNHI 측이 최종적으로 못 받은 돈은 본공사와 추가공사를 합쳐 18억여원이다. 공사비를 못 받게 되자, 2013년 9월 23일 WGL의 동의를 받아 직불요청 서류를 작성해 제출한다. CJ 측은 이 서류를 반려했다고 하나 KNHI 측에서는 돌려받거나 가타부타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벌어진 파국. KNHI에 이어 철골공사를 맡았던 다른 업체 K는 부도가 나 도산했다. K업체의 대표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CJ제일제당이 프랑스 회사 아르케마사와 손잡고 말레이시아 테렝가누에 지은 메치오닌 공장은 당초 2013년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고 2014년 초부터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공사 지연으로 결국 첫 생산은 10개월 이상 늦춰졌다. 사진은 아르케마사 측의 말레이시아 테렝가누 메치오닌 공장 조감도.
CJ 측 “피해를 본 것은 오히려 우리”
“우리도 결국은 피해자다.” CJ 측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들은 기자에게 자신들과 WGL 측이 계약을 맺을 당시에 작성된 ‘입찰참여 안내문’을 제시했다. ‘관세나 보험금, 사원복지와 관련된 사항은 ‘을’이 책임을 진다’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우리도 KNHI 측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사정은 딱하다. 하지만 그것은 WGL과 KNHI 측 사이의 일이 아니냐. 우리가 WGL 쪽에 정산해야 할 대금은 다 줬다. 오히려 추가로 지급된 부분도 있다. 손해를 봤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까지 우리 보고 책임지라고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럴까. KNHI 측은 납품에 차질을 빚자 사실상 검수를 하고 생산을 지휘한 쪽은 ‘슈퍼 갑’ CJ 측이었다며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CJ 측도 방문 사실 등은 인정했다. 하지만 “CJ를 믿고 납품하라”는 식의 구두약속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CJ 측은 이렇게 덧붙였다. “차라리 법정으로 가라고 했다. 정황상 심정적 호소만으로 기업이 돈을 지급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법적 처분으로 지불을 하라면 근거가 되는 것이니…. 그분들이 법적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이나 언론을 찾아가 대기업의 횡포, 갑질 이런 식으로 이슈 제기만 하고 다니고 있다.”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역으로 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돈을 받을 길이 묘연해지자 KNHI 측이 자구책을 모색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주간경향>은 지난해 국회의원실을 매개로 KNHI 측이 CJ 측과 삼자대면해 오간 논의의 녹취록을 입수했다. 의원실 쪽의 중재노력은 실패했다.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CJ 측이 재하청 기업인 KNHI의 납품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다. 2013년 1월 22일부터 24일까지 양측 사이에 오간 이메일 내용을 보면, CJ건설의 채모 대리는 현장을 방문해 공장 소개서부터 제작현황, 품질 및 자재관리에 대한 세세한 서류를 요구한다. 방문행사 일정표를 보면 KNHI의 임원이 총출동해 영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업체 주 상무의 말. “‘을’의 입장에서 대기업하고 일해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이렇게 저렇게 준비해달라고 하는데 토 달 수 있는지를.” 

KNHI 측에서 “우리를 믿고 진행해 달라”고 했다는 CJ 측 말레이시아 현장 총괄책임자는 김○○ 부장이다. CJ를 통해 김 부장과 연락을 부탁했지만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며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과거 국회 대면 녹취록 등에서 드러나는 김 부장의 발언을 보면 자신은 그런 구두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직불요청서를 받은 측은 CJ건설의 김□□ 부장이다. 역시 국회 녹취록에서 CJ건설의 김 부장은 “하도 억울하다고 하길래 아이디어 차원으로 이야기를 건넨 것일 뿐 회사 차원의 공식 요청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취재과정에서 역시 CJ공장 건설에 하청으로 참여했다는 말레이시아 현지 업체 관계자로부터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자기 업체 쪽도 손해를 봤지만 손해의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사실 공사가 지연된 것이 도면이 완벽하지 않아 항상 수정해야 했다. 우리가 손해를 본 것은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여금을 우리 같은 하도급업체 쪽에 물려버렸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CJ 측이 실수를 저질렀다. 예산을 잡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CJ가 했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말레이시아는 인건비도 다르고 여러 조건도 다른데, 그냥 적용한 것이다. CJ건설이 최악의 조건이었던 것은 자기네도 계약한 금액보다 이상이 되니 밑의 업자들을 쪼았던 것이다. 결국 업체들도 받을 돈을 못 받고… 설계변경으로 인한 추가비용 등을 다 못 받았다. 특히 철골 쪽에서 하청 쪽 손해가 컸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해외공사를 하다 보면 문제 없는 공사가 없다. 다른 대기업에서도 하도급을 맡았다가 죽은 업체들도 많다. 그래도 표면적으로 빵 터뜨린 경우는 없다. 왜냐. 다른 기업의 경우 한국에서 하도급 업체를 데리고 온다. 이쪽에서 금액이 깎여도 한국에서 보상을 해준다. CJ가 들어와서 잘못한 것은 업체 선정을 현지에서 한 것이다. 도면이 완벽하지도 않았고, 설계변경이 많아지면서 늦어졌다. 현지 업체는 의외로 손해를 안 봤다. 하다가 안 되니 일찌감치 손 털고 나갔다. 망한 업체들은 다 한국 업체들이었다.” 이 ‘제3의 인사?의 주장에 대해 CJ 쪽 관계자에게 해명을 요청했다. CJ 측은 “현장의 자세한 사정은 우리도 파악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남는 의혹. 하도급 업체는 왜 법정에 가지 않았나. <주간경향>은 동반성장위원회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측이 이 사안과 관련, 공증법무법인으로부터 자문받은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현지법인의 경우 직불청구권의 근거가 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대한 법률’의 적용대상이 되기 힘들며, 9월 23일 등에 작성한 직불동의서의 법적 효력 여부는 WGL로부터 채권양도를 받았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데, CJ건설 측이 이미 공사대금을 지급했다면 채권은 소멸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소송을 벌이더라도 법적 구제를 받기 쉽지 않다는 결론이다. 

하도급 업체인 WGL은 잦은 설계 변경 때문에 공사가 지연됐다고 주장했다. 이미 설치해놓은 가드레일을 설비팀에서 전부 다시 해체하는 등의 시행착오(오른쪽)로 공기가 지연됐다는 것이 WGL 측의 주장이다.
민변 “CJ 측이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간경향>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이미경 의원실을 통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전 위원장을 맡았던 강신하 변호사를 추천받아 이 케이스를 공동검토했다. “종전의 유권해석에 따라 해외 현지법인과의 관계는 국내법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 당사자 중 두 당사자가 분쟁이 있을 경우 국내법을 적용한다는 규정이 있고, 또 기존 판례에 따르면 직원이 직불요청서를 받았더라도 내용을 숙지했다면 통지된 것으로 보게 되어 있다. 게다가 WGL과 CJ건설 사이의 정산은 지금까지 완료되지 않았으므로 소송을 하게 되면 하도급 업체의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의 결론은 “CJ건설 측이 잔여 공사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소송비용과 기간이다. KHNI 측은 “인지대만 300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 그 돈이 있었으면 밀린 월급부터 지급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를 찾아온 CJ 측 관계자는 국회나 언론사를 통한 민원으로 피해가 막대했다고 했다. “그 회사가 작년부터 부도가 난다고 했는데 아직 부도 안 나지 않았느냐.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회장님 앞에서 분신자살을 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이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을 못했다. 인사고과에서도….” 그런데 “똑같이 피해를 봤다”고 넘어가긴 뭔가 불공평한 것 같다. 결국 19명이 직장을 잃는 피해를 본 쪽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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