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집회에서 노란 천을 찢어 만든 깃발을 들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홍승희씨.
재물손괴 벌금 200만원, 도로교통방해 벌금 500만원.
홍승희(25)씨는 ‘소셜아티스트’(사회적 예술가)다. 사회문제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고, 틀에 박힌 전시장을 벗어나 열린 공간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한다. 최근 1년 사이 그의 소셜아트에는 벌금이 700만원이나 붙었다. 예술의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지만 제재의 ‘형식’은 도로교통방해 같은 ‘꼼수’를 썼다. 왜 그럴까?
홍씨는 지난해 6월 강원도 춘천 지하상가에 팝아트 작가 이하씨가 그린 박근혜 정부 비판 스티커 10여장을 붙였다. 재물손괴를 이유로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다. 두 달 뒤에는 세월호 집회에서 노란 천을 찢어 만든 깃발을 들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했다. 도로교통방해죄로 벌금 500만원이 다시 선고됐다. 홍씨는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재물손괴나 도로교통방해 혐의 입증을 위한 질문보다는 ‘박근혜 정부를 싫어하는지’ ‘어디 소속인지’ ‘깃발은 어디 것인지’ 등을 추궁했다”고 했다.
홍씨는 18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어린이공원에서 벌금 마련을 위한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셜펀딩’으로 시민 800명한테서 1만원씩을 후원받고, 후원자들의 ‘메시지’를 그림에 새기는 ‘사회적 예술’이다. 홍씨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벌금형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했다.
사회적 예술은 권력 풍자와 사회적 이슈를 질료로 삼는다. 온라인 게시물, 그래피티, 전단지 살포, 건물 기습점거 등 표현 형식도 다양하다. 제작 과정과 전시 방식도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형식을 고민하기 때문에 ‘공공미술’의 성격도 가진다.
김준기 미술평론가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사회적 예술은 계몽하고 선동했던 기존 민중예술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시민에게 다가가고 권력을 비판한다. 외국에서는 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자리잡았지만 우리나라에선 단순 범죄 혹은 선동으로만 취급되며 예술가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국내의 사회적 예술은 온라인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본격화했다. ‘살아 있는 권력’ 반대편에 선 예술가들에게는 평론이 아니라 법의 잣대가 적용됐다. 2010년 대학강사 박정수씨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는 풍자예술을 선보였다. 경찰은 구속영장까지 신청하는 소동을 벌였다. 대법원은 그에게 공용물건 손상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확정했다.
앞서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경찰은 노무현 대통령을 저격하는 내용의 패러디물을 만든 대학생을 협박미수 혐의로 입건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정치적 반대를 표현하는 패러디물에 협박죄까지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적 예술가들은 박근혜 정부 들어 ‘정권 비판적 예술’에 대한 벌금 압박이 더욱 세졌다고 전했다. 팝아트 작가 이하씨는 “이명박 정부 때는 ‘개구멍’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철조망’을 쳐놓은 느낌이다. 사회적 예술 활동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벌금을 물린다. 정부 비판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꽉 막힌 느낌”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제작·배포한 이씨는 건조물침입죄 등 5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예술행위를 단순 범죄로 몰아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와 마찬가지다. 경제적 압박을 통해 권력 앞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전위적이어야 할 사회적 예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준호 김규남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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