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 흥행작 보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천안함 프로젝트 등 사회참여적 영화로 관객에게 더 친숙한 정지영 감독(아우라픽처스)이 미디어오늘 창간 20년을 맞아 우리 사회 언론과 영화에 대한 진단과 쓴소리를 했다. 그는 미디어오늘 창간 해인 1995년 스크린쿼터 투쟁에 앞장서며, 영화계의 성찰과 각성을 이끌었던 영화인 중의 한 명이었다.
정지영 감독은 28일 일산 아우라픽처스 사무실에서 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20년 동안의 언론환경의 변화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언론에 익숙해졌다”며 영화 ‘다이빙벨’과 언론의 문제를 짚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문제에 있어 다이빙벨과 이종인은 이미 사기꾼으로 돼있다”며 “국민들 스스로 정확히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채 이를 인정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언론의 탓이 크다는 것. 정 감독은 “언론 내에서 왕따 안되기 위해 주류에 휩쓸려간 경향이 보였다”며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인터뷰하고 파헤친 매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주류 언론은 ‘이종인이 죄송하다’ 했다 해서 그를 사기꾼으로 몰았다”며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마찬가지로, 그러니 온 국민은 그와 다이빙벨은 사기라고 쉬 단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감독은 “그런 면에서 미디어오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석궁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의 흥행 이후 지난 2013년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한 ‘천안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영화는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의문점을 영상으로 재구성해 반향을 낳았다. 당시 해군과 국방부, 천안함 유가족으로부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당했다가 승소했으나 영화상영 첫날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이 일제히 영화상영을 취소하는 사상초유의 일을 겪기도 했다. 이후 천안함 프로젝트는 상업 영화관 상영 대신 독립영화관 또는 시민사회를 통한 방식으로 1년 간 유통됐다. 이 영화는 VOD 파일을 무료 다운로드로 일반에 제공되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이 지난 28일 아우라픽쳐스 사무실에서 진행한 미디어오늘 창간 20돌 인터뷰에서 영화계 언론계에 쓴소리를 했다. 사진=최창호 'way' PD | ||
정 감독은 “그 영화를 만들 당시만 해도 많은 국민들과 공유했으면 하는 생각이었으나 이제는 야당 정치인들도 천안함 폭침으로 인정하는 시대가 됐다”며 “왜 자신의 입장이 바뀌었는지 설명하지 않은 채 돌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감독은 “이는 분단모순의 연장”이라며 “정치인들은 좀더 많은 국민과 의견을 같이 해야 정치적 입지를 확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천안함 의혹을 제기했다가는 졸지에 종북주의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희한한 사회, 왜곡된 사회가 돼버렸다”며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하자고 약속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정 감독은 “무료 다운로드를 실시했으나 많이 다운로드되지도 않았다”며 “아마도 그것을 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시대가 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 감독은 ‘천안함 프로젝트’ 실험에 대해 “만들 때 기획의도나 제작자 생각이 결국 성공하지는 못한 것”이라며 “수백만 명이 보는 것이 성공이라고 볼 때 그렇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그러나 이 영화는 그 가치를 두면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영화사적으로도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라며 “천안함 프로젝트나 다이빙벨과 같은 영화는 과거 같으면 TV(PD수첩, 그것이 알고싶다, 추적60분)에서 했을 법한 내용이지만, 어느새 그들이 정권의 시녀가 되면서, 손을 놨다. 그래서 우리 영화가 대신했다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영화사 뿐 아니라 현대사에도 남게 될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도 그는 전했다. 정 감독은 다이빙벨 상영을 결정했던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와 여권의 박해 등을 두고 “영화계가 대가는 치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인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돌아서지는 않았다”며 “이 위원장이 그런 일로 그만두게 된다면 부산영화제는 존치하는 것 자체가 문제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영화인들이 참여 안하면 부산영화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부산시나 문화부에서도 이용관 위원장이 바뀌는 것이 당장 (정치적으로) 좋을 수 있으나 더 큰 손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지영 감독. 사진=최창호 'way' PD | ||
첨예한 사회참여적 영화를 제작해온 정 감독은 따지고 보면 과거 1990년대엔 잘나가던 상업영화 감독이기도 했다. 하얀전쟁, 남부군,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등 1990년 대 흥행작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 감독은 그동안 대기업과 한 차례도 함께 제작을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앞으로는 멜로 영화와 같은 분야에서 대기업과 함께 영화를 찍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가 대기업과 영화를 함께 하지 않은 이유는 대기업이 영화계에 뛰어든 시기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인 면도 있다. 정 감독은 지난 영화계 20년에 대해 “20년 전 영화계는 암흑기를 막 벗어나 (새로 태어나기) 시작했다”며 “스크린쿼터 투쟁을 벌이면서 영화인 스스로 사명감과 자각을 하기 시작했으며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진정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태동했다”고 전했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한국영화가 발전한 기폭제는 DJ 정부의 검열폐지였다”며 “이를 통해 정부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검열의 주체가 정부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이 영화계에 들어와 투자하면서 자본이 검열하는 시대가 됐다”며 “(영화계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시대”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기업이 투자, 제작, 배급, 상영까지 하면서 독점하고, 영화제작자와 감독조차 거기에 줄을 서야만 작품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싸움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권이 이로부터 지켜줘야 하나 정치권 역시 자본의 노예이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에 대해 정 감독은 “최근 MB정권 이후 언론이 정권의 시녀가 돼버렸고, 진보언론 조차도 자본의 눈치를 안볼 수 없는 시대에 와있다”며 “미디어오늘은 정도를 가려는 노력하는 것 같아 고맙다. 미디어오늘이 더 넓게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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