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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21, 2015

그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교회 비평,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세월호 희생자 304위를 추모하며

정오였다. 산 사람은 살아서 위장에 밥을 집어넣으러 식당에 앉아 있는데, 창 밖이 일순간 어두워지며 비가 쏟아진다. 비정한 세상, 선박회사의 탐욕과 무능한 정부와 인정머리 없는 대통령이 304명의 목숨들을 바다에 수장시킨 시각이었다. 탐욕은 발뺌을 하고, ‘국가’가 사라진 그날, 아이들은 기울어가는 배에서 SNS로 타전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는 세월호 선박 안에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볼 수가 없었다. 짐짓 광화문에도 가지 않았다. 먼발치에서만 세월호를 보는 법을 익혔다. 어린 딸을 키우는 아비로서, 딸 같은 그 아이들의 천진함을 알고 있는 아비로서, 그 무죄한 죽음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한 1년이 지나고 나서야 광화문을 찾았고, 팽목항에 다녀왔다. 아직도 현실 같지 않은 그날의 참담함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져 본다.
 다하우 수용소.(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손목에 노란 추모 매듭을 묶고,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처럼 묻는다. “그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책을 쓴 엘리자베스 A. 존슨은 뮌헨 근처의 다하우 수용소에 방문했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각종 고문 기구를 전시한 수용소 박물관에는 알베르토 마인스링어라는 이름의 수감자가 입었던 해진 줄무늬 옷 한 벌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옆에 두 장의 종이가 진열되어 있다. 그가 입소할 때 쓴 글과 출소할 때 남긴 기록이었다.

1939년 입소기록에는 몸무게 114킬로그램이었고, 그의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그런데 1945년 출소기록에는 몸무게 41킬로그램, 종교란엔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배고픔과 구타, 격한 노동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알베르토의 몸이 마르는 것만큼 영혼도 그러했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 역시 저절로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는 살아남았지만, 300만 명의 비유대인들이 그처럼 고통을 겪고 죽었으며,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600만 명의 사람이 학살당했다. 이 고통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물었다. “그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냐?”고. 여기서 ‘자비로운 군주’의 이미지를 가진 하느님,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시며,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은 입을 닫아야 했다.

  
▲ 카를 라너.(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교회와 신학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만약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지만 막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 하느님은 ‘무자비한’ 하느님이다. 아니, 이 무고한 죽음을 막을 능력이 없는 하느님이었다면 이 하느님은 ‘무능한’ 하느님이다. 이처럼 무자비하고 무능한 하느님이라면 우리가 그분을 섬길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독일신학자 몰트만은 “예수가 무고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느님과 함께 돌아가셨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학살당할 때 하느님도 그들과 더불어 학살당했다”고 전했다. 카를 라너는 하느님을 전능한 군주, 해결사 하느님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인간과 더불어 근심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하느님은 죄 없는 이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악의 실체를 고스란히 폭로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백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국가권력과 인간폭력에 저항하는 길뿐이다. 그 길만이 사람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살리는 길이다.

<뜻밖의 소식> 인터뷰 과정에서 만났던 단원고 2학년 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의 말이 그랬다. 처음에는 성호를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지만, 결국 성호는 주검이 되어 물 밖으로 나왔다. 이때 그분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끝내 구해 주시지 않은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성호의 구출도 원하지 않으신 것 같다”고.

304명의 무고한 죽음, 이 죽음이 가져온 것은 세월호를 둘러싼 악의 실체에 대한 폭로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언론과 국가권력과 기업과 정치세력과 대통령마저 ‘악의 연대성’ 안에서 촘촘히 얽혀 있다는 사실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절대로’ 진상규명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을 통해 진상조사를 지휘 통제하려는 음모를 꾸민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조사 대상이 조사를 지휘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가능한 것은 권력의 몰염치와 두려움 때문이다. 악의 실체가 세월호를 매개로 해부당하는 것을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세월호에서 희생된 304위와 함께 물에 잠기셨고 ‘돌아가셨다.’ 하느님은 4월 16일 참혹한 세월호 선체의 아수라장 속에서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계셨다. 하느님의 죽음을 참담한 심정으로 애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권리이며, 하느님을 되살리기 위해 저항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는 주교와 사제, 수도자와 신자들의 행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참사의 절박함에 열심히 물을 타고, ‘정치개입’이라고 타박하고 나서는 이들도 있다. ‘지속적이고 안정된 경제성장’을 위해 그만 세월호 문제를 덮어 버리자고 윽박지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주교와 사제와 수도자와 신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은연중에 세월호참사를 낳은 악의 세력에 동조하는 것이다. 악은 교회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다.

세월호참사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문제이기 전에 ‘하느님’의 문제다. 신학의 문제다. 하느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악의 구조를 밝히는 영적 투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월호 미사에 참여하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다. 600만 신자 가운데 20-30명의 신자들만이 좁은 천막에 앉아서 미사를 봉헌한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절감했던 외로움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목련꽃이 지고, 화사하게 거리를 장식하던 벚꽃들이 지난밤에 눈발처럼 바닥에 떨어진 자리에, 오늘 아침 라일락이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생명은 그렇게 여지없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데, 광화문 광장에 아름다운 연인들은 있을지언정 아름다운 영혼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염치없는 정치꾼들이 ‘도덕성 없는 능력’을 과시하는데, 영적 투쟁에 나선 이들은 보잘 것 없다. 욥은 죄 없이 고통받으면서 “그분은 무고한 자들의 불행에 웃으시는구나.”하고 말했다. 의인은 예나 지금이나 외로운 모양이다.

악이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동안, 불행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는 세상을 향해 “그래도 사랑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잠시 의심한다. “그래도 하느님은 여기 있지, 이 사람들 곁에.”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유가족들이 삭발을 하고 안산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 자식들의 영정을 품고 걸어도 세상은 끄떡하지 않는다. 청와대로 가는 모든 길은 봉쇄되었다. 이때 시몬 베유가 한 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암흑 속에서조차 영혼이 사랑하기를 그치면 하느님은 정말로 영영 없게 된다.” “영혼이 사랑하기를 그치면 그때부터 그 영혼에게 이승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믿음은 결국 사랑이 승리할 거라는 희망이다. 사순절 너머에 반드시 부활절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가엾게 죽은, 죄 없이 이승을 떠난 이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지금도 세상 어느 곳에선가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는 한, 하느님은 그들과 더불어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 이제 세상의 악에 저항하는 영적 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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