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세입자 울리는 ‘부동산 왕족’
서울 용산구 한남동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부근 도로변의 2층짜리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일대에서 도드라지는 공간이다. 시멘트 재질의 외벽에 전면 유리로 내부를 시원하게 드러낸 이 카페는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면서 명소로 떠올랐다. 주인공 한가인과 엄태웅이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카페다. 책과 예술을 접목한 카페 운영 방식도 손님을 불러모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카페이면서 서점이자, 미술관이자,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다.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두 달에 한 번씩 바꿔가며 전시한다. 전시는 60차례 열었다. 카페 수익금 일부는 예술가 지원에 쓴다. 지난 1일부터 이곳에 작품을 전시 중인 미술작가 신제현씨(33)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예술가 지원 공간이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상업시설과 결합해 그 수익금으로 자체 운영되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작가들이 서로 전시하고 싶어하는 곳”이라고 했다.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명소로, 화제의 장소로 소개되던 카페는 최근 문화 영역이 아니라 사회 영역에 등장했다.
지난 22일 오전 9시쯤 테이크아웃드로잉 주변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변호사가 법원 집행관을 대동하고 건물로 찾아와 집행을 통보했다. 용역 40여명이 건물 주변에 진을 쳤다. ‘명도단행 가처분’ 집행을 하러 온 이들이다. 카페 주인과 예술인들은 이날 집행에 맞서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기자들에게 앞서 알린 회견 제목은 ‘문화대통령 싸이, 젊은 문화공간의 공공성을 파괴하지 말라’였다. 테이크아웃드로잉 건물주는 ‘한류 최고 스타’ 싸이(본명 박재상)다.
▲ ‘건축학개론’ 촬영장이자
싸이 소유 건물로 유명세를 탄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갑자기 용역이 들이닥쳤다
▲ 5년 전 고깃집이었던 건물을
문턱 낮은 문화공간으로 가꾼
예술가의 땀이 허물어질 위기다
▲ 연예인들, 왜 부동산에 집착하나
‘언제 식을지 모르는 인기’ 불안감
매매차익·임대수익 노리면서
세입자와 갈등 겪는 사례가 많다
▲ 상가 건물 재건축을 하면
세입자는 가게를 비워야 한다
문제의 법을 바꿔야 한다
그 이전에 건물주는 ‘상생’을 결단해야 한다
싸이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날 카페는 최근 도시 문제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 임차인에게 불리한 현행 상가임대차법의 문제와 함께 한국인의 부동산 열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까지 지칭한다. 테이크아웃드로잉 공간은 이전에는 고깃집이었다. 미술가 최소연씨(47)가 2010년 대중 소통을 위한 예술공간,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문턱 낮은 문화공간을 만들려는 꿈을 갖고 입주했다. 당시엔 주변 상권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대학로 등지에서 임대 계약만료와 동시에 여러번 쫓겨났던 최씨는 10년 이상 장사할 곳을 찾다가 고깃집에 자리를 잡았다. 권리금으로 6500만원을 줬다. 당시 일본인 건물주는 ‘임차인이 원하면 매년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어줬다. ‘이번엔 오래 있을 수 있겠구나’ 싶어 수억원을 들여 건물 전체를 개·보수하고 가게를 열었다.
2010년 10월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두번째 건물주는 재건축을 이유로 나가 줄 것을 통보했다. 최씨는 전 주인과의 계약 내용을 거론하며 버텼다. 그러자 새 주인은 법원에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최씨는 2013년 12월 말까지 나가겠다고 건물주와 합의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법 상 건물주가 재건축할 경우 세입자는 무조건 가게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 합의였다.
합의조정한 지 두 달 뒤인 2012년 2월, 건물주가 또 바뀌었다. 알고 보니 바뀐 주인은 싸이였다. 싸이 측은 이전 건물주와 카페 측의 합의 내용을 근거로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다. 대신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건물 매매가는 계속 올랐다. 2010년 최씨가 세 들 때 30억원이었던 매매가는 싸이 부부가 매입할 땐 78억원이 됐다. 현재 시세는 100억원 안팎이다.
최씨는 싸이 측에 “전 건물주가 재건축하겠다기에 조정에 응한 것이며, 재건축을 하지 않는다면 기존 조정은 무효”라고 했다. 싸이는 지난해 8월 ‘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은 2월 싸이 손을 들어줬다. 재판 관련 공문이 다른 곳으로 발송되면서 최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줄도 몰랐다.
지난달 6일 오전 법원 집행관들이 용역들과 함께 카페에 찾아와 집기를 철거했다. 가게 앞엔 펜스도 설치했다. 최씨가 1주일 뒤 다시 가게 문을 열자 법원은 지난 10일 싸이 측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명도단행 가처분’을 다시 내줬다. 이후 싸이 부부 대리인은 협조문을 보내 “명도집행 중에 전시 중인 소중한 작품들이 훼손·손실될 우려가 있으니 금일(지난 21일) 중으로 작품과 공구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최씨는 “협조문이 아닌 협박문”이라고 주장했다. 협조문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는 대신 재건축할 예정”이라고도 적혀 있었다.
예술인들과 용역 간 충돌의 긴장감은 싸이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집행을 연기하겠다. 책임지고 중재하겠다”고 테이크아웃드로잉 측에 연락을 취해오면서 해소됐다. 기자회견에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비판이 고조되던 때였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21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좀 더 높은 임대수익을 위해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근사한 예술공간을 용역을 동원해 내쫓으려는 건물주는 다름 아닌 ‘문화대통령’ 싸이”라고 했다.
세입자와 갈등을 빚은 연예인은 여럿이다. 중견탤런트 길용우도 지난 2월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본인의 상가건물을 재건축하려고 세입자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2012년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4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힙합그룹 리쌍도 1층에서 곱창집을 하던 세입자에게 계약 만료를 이유로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가 4억원가량의 권리금과 시설비를 날리게 된 세입자가 반발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과 분쟁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건물주가 연예인이라면 더 주목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 간 분쟁엔 요즘 부각된 연예인의 부동산 소유와 한국의 고질적인 부동산 열망 문제가 그대로 녹아 있다. 연예인들, 그중에서도 특급 스타들은 서울 요지에 거액의 부동산을 소유한 이가 많다. 거액의 부동산을 소유한 연예인에 관한 소식은 자주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연예 뉴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재벌닷컴은 지난해 8월 유명 연예인 40명이 보유한 빌딩의 실거래 가격을 발표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등 18명이 100억원 이상 빌딩을 가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 회장은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빌딩 2채 등이 650억원으로 연예인 최고 빌딩부자에 올랐다. 2위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마포구 서교동과 합정동 소재 빌딩 실거래가가 510억원이었다. 3위는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로 강남구 논현동과 종로구 묘동 소재 빌딩이 440억원이었다. 배우 전지현(본명 왕지현)은 강남구 논현동과 용산구 이촌동 소재 빌딩의 실거래가가 230억원으로 여자 연예인 중 최고 빌딩부자였다. 송승헌(210억원), 비(본명 정지훈·200억원), 유인촌(190억원), 박중훈(190억원), 권상우(180억원), 차인표·신애라 부부(170억원), 김희애(170억원), 김태희(140억원), 장동건(120억원), 장근석·고소영(각 110억원) 등이었다.
연예인 건물주는 일반인 건물주와 같고도 다르다. 같은 점은 수익을 노린 투자라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주로 강남 빌딩을 사들여 매매차익과 임대수익을 동시에 노린다. 심형석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처음엔 주택을 구입하다가 상가, 오피스텔로 발전하고 빌딩은 부동산 투자의 마지막 단계”라면서 “부동산 가격이 일부 하락하더라도 특히 강남에서 임대료가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는 여느 부자, 또 부동산을 소유하려는 한국인의 일반적 욕망과 다를 게 없다.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손낙구씨는 “한국에서 부동산만큼 높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처는 없다”면서 “과거처럼 가격이 급등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여전히 작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금 동원 능력이 있는 연예인들은 부동산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연예인의 ‘소득 불안정’을 꼽는다. 언제 식을지 모르는 인기 때문에 목돈이 생기면 안정적인 투자처로 부동산을 선택한다. 손낙구씨는 “부동산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강해 민주·보수 정권 할 것 없이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연예인처럼 수익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투자 위험이 큰 창업이나 주식에 비해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설명했다.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은 꾸준히 소득이 발생하는 월급쟁이와 달리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 후를 위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때 붐이었던 연예인 이름을 내건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 부원장은 “주식에 비해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투자가 쉽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도 이유”라고 했다. 그는 “연예인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거액을 대출받아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이미 포화 상태인 자영업에 나섰다가 가게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디자인연구가인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유명 연예인들 정도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투자할 만한 곳이 부동산 외에 많지 않다. 빌딩을 살 만한 자산이 없으면 자영업에 나서는 것도 일반인과 같다”면서 “1980~1990년대 비슷한 인기를 얻었던 연예인들의 경우에도 부동산 투자 여부에 따라 현재 쌓은 부에 큰 차이가 난다. 보통 한국인의 부 축적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수입이 불안정한 연예인들이 임대료를 통해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가 가능해지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연예인들의 부동산 소유는 투자나 투기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새로운 상징과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과거 강남의 ‘복부인’이 특권화·계급화된 한국의 부동산 문화를 상징했다면 이제는 연예인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고 분석했다. 투자처로서 강남이 중요한 것은 높은 수익성 때문만은 아니다. 조 교수는 “돈 많은 사람이 강남에 상징성이 있는 건물을 사서 추가적으로 부를 얻는 것은 오랫동안 강남을 중심으로 축적돼 온 한국 특유의 부동산 문화다. 폐쇄화된 계급공간에서 부를 쌓은 사람들끼리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가치를 올려낸다”고 했다. 그는 “연예인을 동경하는 대중들이 연예인의 부동산도 선망하는 새로운 상징, 문화가 만들어졌다. 연예인의 부동산 소유 자체가 아이콘화된 것이고, 연예인이 예전 복부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해천 교수는 시대의 유행 차원에서 들여다본다. 박 교수는 “2006~2008년 부동산 붐이 일 때 연예인들이 매입한 건물들을 보면 강북의 핫플레이스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연예인들이 사는 공간은 그 시기 유행과 맞물려 있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부근 도로변의 2층짜리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일대에서 도드라지는 공간이다. 시멘트 재질의 외벽에 전면 유리로 내부를 시원하게 드러낸 이 카페는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면서 명소로 떠올랐다. 주인공 한가인과 엄태웅이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카페다. 책과 예술을 접목한 카페 운영 방식도 손님을 불러모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카페이면서 서점이자, 미술관이자,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다.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두 달에 한 번씩 바꿔가며 전시한다. 전시는 60차례 열었다. 카페 수익금 일부는 예술가 지원에 쓴다. 지난 1일부터 이곳에 작품을 전시 중인 미술작가 신제현씨(33)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예술가 지원 공간이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상업시설과 결합해 그 수익금으로 자체 운영되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작가들이 서로 전시하고 싶어하는 곳”이라고 했다.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명소로, 화제의 장소로 소개되던 카페는 최근 문화 영역이 아니라 사회 영역에 등장했다.
지난 22일 오전 9시쯤 테이크아웃드로잉 주변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변호사가 법원 집행관을 대동하고 건물로 찾아와 집행을 통보했다. 용역 40여명이 건물 주변에 진을 쳤다. ‘명도단행 가처분’ 집행을 하러 온 이들이다. 카페 주인과 예술인들은 이날 집행에 맞서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기자들에게 앞서 알린 회견 제목은 ‘문화대통령 싸이, 젊은 문화공간의 공공성을 파괴하지 말라’였다. 테이크아웃드로잉 건물주는 ‘한류 최고 스타’ 싸이(본명 박재상)다.
▲ ‘건축학개론’ 촬영장이자
싸이 소유 건물로 유명세를 탄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갑자기 용역이 들이닥쳤다
▲ 5년 전 고깃집이었던 건물을
문턱 낮은 문화공간으로 가꾼
예술가의 땀이 허물어질 위기다
▲ 연예인들, 왜 부동산에 집착하나
‘언제 식을지 모르는 인기’ 불안감
매매차익·임대수익 노리면서
세입자와 갈등 겪는 사례가 많다
▲ 상가 건물 재건축을 하면
세입자는 가게를 비워야 한다
문제의 법을 바꿔야 한다
그 이전에 건물주는 ‘상생’을 결단해야 한다
싸이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날 카페는 최근 도시 문제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 임차인에게 불리한 현행 상가임대차법의 문제와 함께 한국인의 부동산 열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까지 지칭한다. 테이크아웃드로잉 공간은 이전에는 고깃집이었다. 미술가 최소연씨(47)가 2010년 대중 소통을 위한 예술공간,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문턱 낮은 문화공간을 만들려는 꿈을 갖고 입주했다. 당시엔 주변 상권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대학로 등지에서 임대 계약만료와 동시에 여러번 쫓겨났던 최씨는 10년 이상 장사할 곳을 찾다가 고깃집에 자리를 잡았다. 권리금으로 6500만원을 줬다. 당시 일본인 건물주는 ‘임차인이 원하면 매년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어줬다. ‘이번엔 오래 있을 수 있겠구나’ 싶어 수억원을 들여 건물 전체를 개·보수하고 가게를 열었다.
2010년 10월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두번째 건물주는 재건축을 이유로 나가 줄 것을 통보했다. 최씨는 전 주인과의 계약 내용을 거론하며 버텼다. 그러자 새 주인은 법원에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최씨는 2013년 12월 말까지 나가겠다고 건물주와 합의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법 상 건물주가 재건축할 경우 세입자는 무조건 가게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 합의였다.
합의조정한 지 두 달 뒤인 2012년 2월, 건물주가 또 바뀌었다. 알고 보니 바뀐 주인은 싸이였다. 싸이 측은 이전 건물주와 카페 측의 합의 내용을 근거로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다. 대신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건물 매매가는 계속 올랐다. 2010년 최씨가 세 들 때 30억원이었던 매매가는 싸이 부부가 매입할 땐 78억원이 됐다. 현재 시세는 100억원 안팎이다.
최씨는 싸이 측에 “전 건물주가 재건축하겠다기에 조정에 응한 것이며, 재건축을 하지 않는다면 기존 조정은 무효”라고 했다. 싸이는 지난해 8월 ‘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은 2월 싸이 손을 들어줬다. 재판 관련 공문이 다른 곳으로 발송되면서 최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줄도 몰랐다.
지난달 6일 오전 법원 집행관들이 용역들과 함께 카페에 찾아와 집기를 철거했다. 가게 앞엔 펜스도 설치했다. 최씨가 1주일 뒤 다시 가게 문을 열자 법원은 지난 10일 싸이 측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명도단행 가처분’을 다시 내줬다. 이후 싸이 부부 대리인은 협조문을 보내 “명도집행 중에 전시 중인 소중한 작품들이 훼손·손실될 우려가 있으니 금일(지난 21일) 중으로 작품과 공구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최씨는 “협조문이 아닌 협박문”이라고 주장했다. 협조문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는 대신 재건축할 예정”이라고도 적혀 있었다.
예술인들과 용역 간 충돌의 긴장감은 싸이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집행을 연기하겠다. 책임지고 중재하겠다”고 테이크아웃드로잉 측에 연락을 취해오면서 해소됐다. 기자회견에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비판이 고조되던 때였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21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좀 더 높은 임대수익을 위해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근사한 예술공간을 용역을 동원해 내쫓으려는 건물주는 다름 아닌 ‘문화대통령’ 싸이”라고 했다.
세입자와 갈등을 빚은 연예인은 여럿이다. 중견탤런트 길용우도 지난 2월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본인의 상가건물을 재건축하려고 세입자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2012년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4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힙합그룹 리쌍도 1층에서 곱창집을 하던 세입자에게 계약 만료를 이유로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가 4억원가량의 권리금과 시설비를 날리게 된 세입자가 반발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과 분쟁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건물주가 연예인이라면 더 주목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 간 분쟁엔 요즘 부각된 연예인의 부동산 소유와 한국의 고질적인 부동산 열망 문제가 그대로 녹아 있다. 연예인들, 그중에서도 특급 스타들은 서울 요지에 거액의 부동산을 소유한 이가 많다. 거액의 부동산을 소유한 연예인에 관한 소식은 자주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연예 뉴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재벌닷컴은 지난해 8월 유명 연예인 40명이 보유한 빌딩의 실거래 가격을 발표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등 18명이 100억원 이상 빌딩을 가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 회장은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빌딩 2채 등이 650억원으로 연예인 최고 빌딩부자에 올랐다. 2위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마포구 서교동과 합정동 소재 빌딩 실거래가가 510억원이었다. 3위는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로 강남구 논현동과 종로구 묘동 소재 빌딩이 440억원이었다. 배우 전지현(본명 왕지현)은 강남구 논현동과 용산구 이촌동 소재 빌딩의 실거래가가 230억원으로 여자 연예인 중 최고 빌딩부자였다. 송승헌(210억원), 비(본명 정지훈·200억원), 유인촌(190억원), 박중훈(190억원), 권상우(180억원), 차인표·신애라 부부(170억원), 김희애(170억원), 김태희(140억원), 장동건(120억원), 장근석·고소영(각 110억원) 등이었다.
연예인 건물주는 일반인 건물주와 같고도 다르다. 같은 점은 수익을 노린 투자라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주로 강남 빌딩을 사들여 매매차익과 임대수익을 동시에 노린다. 심형석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처음엔 주택을 구입하다가 상가, 오피스텔로 발전하고 빌딩은 부동산 투자의 마지막 단계”라면서 “부동산 가격이 일부 하락하더라도 특히 강남에서 임대료가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는 여느 부자, 또 부동산을 소유하려는 한국인의 일반적 욕망과 다를 게 없다.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손낙구씨는 “한국에서 부동산만큼 높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처는 없다”면서 “과거처럼 가격이 급등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여전히 작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금 동원 능력이 있는 연예인들은 부동산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연예인의 ‘소득 불안정’을 꼽는다. 언제 식을지 모르는 인기 때문에 목돈이 생기면 안정적인 투자처로 부동산을 선택한다. 손낙구씨는 “부동산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강해 민주·보수 정권 할 것 없이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연예인처럼 수익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투자 위험이 큰 창업이나 주식에 비해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설명했다.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은 꾸준히 소득이 발생하는 월급쟁이와 달리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 후를 위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때 붐이었던 연예인 이름을 내건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 부원장은 “주식에 비해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투자가 쉽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도 이유”라고 했다. 그는 “연예인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거액을 대출받아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이미 포화 상태인 자영업에 나섰다가 가게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디자인연구가인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유명 연예인들 정도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투자할 만한 곳이 부동산 외에 많지 않다. 빌딩을 살 만한 자산이 없으면 자영업에 나서는 것도 일반인과 같다”면서 “1980~1990년대 비슷한 인기를 얻었던 연예인들의 경우에도 부동산 투자 여부에 따라 현재 쌓은 부에 큰 차이가 난다. 보통 한국인의 부 축적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수입이 불안정한 연예인들이 임대료를 통해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가 가능해지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박해천 교수는 시대의 유행 차원에서 들여다본다. 박 교수는 “2006~2008년 부동산 붐이 일 때 연예인들이 매입한 건물들을 보면 강북의 핫플레이스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연예인들이 사는 공간은 그 시기 유행과 맞물려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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