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 대통령광장에 있는 역대 대통령들의 동상 ⓒ 최규화 |
<오마이뉴스>가 시민기자들과 함께 가을 소풍을 갔다. 장소는 청남대.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했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빼어난 주변 환경에 반해 1983년 6월 착공을 지시, 그 해 12월 27일 완공된 대통령 전용 별장이었다. 처음엔 영춘재라 불리던 이 시설 명칭은 1986년 7월 청남대로 개칭된다.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청남대 측에 따르면 이 시설은 1983년 준공 이후 총 89회에 걸쳐 역대 대통령들의 휴양지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원래 대한민국 대통령 별장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경남 김해 등 전국 4군데에 있었으나 1993년 김영삼 대통령 당시 나머지 3개 시설은 모두 폐쇄하고 이곳 청남대만 남겨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청남대도 현재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 아니다. 2003년 4월 1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 시설을 충청북도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대통령 당선 후 이를 이행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공약 이행에 따라 국민에게 개방된 청남대의 인기는 대단하다. 지난 10년간(2003년~2012년) 청남대를 방문한 이들은 모두 664만3353명에 이르며, 일일 평균(개방일 기준)으로 나누면 2270명에 이를 정도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가을 소풍을 간 지난 10월 18일에도 방문객 규모가 대단했다.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고자 전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이들이 요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나 역시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오마이뉴스> 대절 버스를 탔다. 그동안 보지 못한 시민기자들과 인사도 나누고 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로부터 대통령 별장에 대한 강연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점심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준비된 오찬을 한 후 자유 시간을 즐겼다. 그때였다. 대통령 역사 문화관을 관람하던 중 내가 발견한 이해할 수 없는 전시물을 보게 된 게.
노무현 대통령 약력에 '5월 23일서'... 이게 뭐지
▲ 청남대 대통령 역사 문화관 내 노무현 대통령 약력 소개 2002년 대통령 당선 사실도 없고, 2009년 서거 관련 글씨중 '서'자만 써 있는 노무현 대통령 약력 소개. 다른 대통령 약력 소개 글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만 잘못되어 있었다.ⓒ 고상만 |
청남대 내 대통령 역사 문화관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치러진 모든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와 그 득표 결과, 그리고 최종 당선자 기록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나는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재 박근혜 대통령까지 기록을 찬찬히 살펴봤다. 새삼스럽게 과거 역사가 떠올렸다. 나름 재미있는 전시였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전시물 앞에서 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갖게 되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약력 소개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5월 23일. 당연히 '서거'라고 써 있어야 할 자리에 뜬금없이 '5월 23일서'라고만 써 있었다. 대통령의 서거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에서 중대한 탈자가 있다니 대단히 유감스러웠다. 그래서 이 사실을 관리사무소에 알려 수정하도록 요구하려 했다.
그런데 혹시나 싶어 다시 꼼꼼히 살펴보는데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 중대한 이상이 보인 것이다. 바로 대통령 당선 기록이었다.
전시관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모든 대통령 약력에는 대통령 당선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무려 6번이나 대통령 지위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는 그 6번 모두 재임기간을 써 놓고 있었다. 모든 대통령이 그러했다.
▲ 박정희 대통령 약력 소개 무려 6번이나 대통령 지위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약력 소개. 대통령 재임 기간까지 아주 상세하게 써 있고 서거 경위도 상세하다. ⓒ 고상만 |
▲ 박근혜 대통령 약력 소개 대통령 당선 사실뿐만 아니라 사소한 약력까지 상세하게 써 있는 박근혜 현 대통령 기록. ⓒ 고상만 |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만 달랐다. 대통령 재임기간은 고사하고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러면서 대통령 사망을 의미하는 '서거' 대신 단지 '서'자만 써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것이 실수일까? 대통령이 아니니 서거도 아니라는 취지의 또 다른 일베(일간 베스트)류 모욕 행위는 아닐까? 처음엔 단순 실수겠지 싶었던 나는 점점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 역사 문화관에 있는 모든 전시물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상한 점이 또 발견됐다. 이번엔 1992년 실시된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출마 후보자의 전시물이었다.
대통령 역사 문화관에는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의 포스터 사진과 득표 숫자를 전시하고 있었다. 저때 저런 대통령 후보가 출마했었나 싶도록 생소한 사람까지도 전부 꼼꼼히 전시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일하게 단 한 사람만 사진이 없었다. 바로 1992년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백기완 후보였다.
담당자는 백기완 후보 선거 포스터를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었다. ⓒ 고상만 |
당시 출마했던 후보는 모두 8명. 그 중 새한국당 이종찬 후보가 중도 사퇴했고 끝까지 완주한 후보는 모두 7명이었다. 이 가운데 신한국당 김영삼 후보가 41.96%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중도 사퇴한 이종찬 후보를 비롯해 백기완 후보보다 훨씬 득표수가 낮은 다른 두 후보의 포스터 사진도 다 있는데 유일하게 백기완 후보만 음흉한 그림자 이미지로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청남대 전시 담당자 "실수... 빠른 시일 내에 수정"
정말 이상했다. 왜 노무현 대통령과 백기완 후보의 전시물 기록만 그럴까. 나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10월 31일 청남대 대통령 관련 자료 수집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 관련 전시물에 대해 담당자에게 물었다. 담당자는 약간 당황해 하더니 "사실을 확인해 보겠다"며 답했다. 잠시 후 사실을 확인한 담당자는 당황해하며 "실수다. 제대로 내용을 보지 못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자료 수집 담당 직원에 따르면 해당 전시물들은 지난 9월 27일부터 특별 전시 형태로 방문객에게 공개된 것이라고 했다. 청남대 측에서 전시물의 내용을 작성한 후, 이를 외주업체에 의뢰해 납품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납품된 전시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실수라고 인정했다. 나는 "그렇다면 1992년 백기완 후보 포스터는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의 답은 의외였다. 백기완 후보의 포스터 자료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이었다.
백기완 후보는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끝까지 완주해 23만8648표를 얻었다. 따라서 당시 백기완 후보의 선거 포스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만 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다. 그런데 이 선거 포스터를 구할 수 없어 그림자 이미지로 전시했다는 것은 백기완 후보 입장에서는 대단히 모욕적인 느낌이 들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에게 "정말 사정이 그렇다면 당사자인 백기완 후보에게 연락해 포스터를 구하거나 또는 이처럼 전시한다는 양해라도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나는 이러한 사실을 노무현재단 주영훈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 주 실장은 "사실을 알려주어 고맙다"며 "청남대에 사실을 확인한 후 바로 잡도록 요구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전시 담당자가 그런 행위를 고의적으로 한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는 의문은 많다. 정말 실수였을까. 청남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이행이라는 결단을 통해 충청북도에 이관된 시설물이다. 공약을 쉽게 무시하는 대통령이 즐비한 우리나라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분이다. 그렇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이곳 청남대에서 특별한 인연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물이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한 후 나는 입맛이 썼다.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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