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교수 등 10명 경찰 차벽 법적 견해 설문…8명 불법, 1명 합법, 1명 보류
경찰 “질서유지선의 일종, 차벽도 ‘표지’에 포함” VS 법학자들 “터무니없는 해석”
[헤럴드경제=이지웅ㆍ김진원 기자] 지난 18일 세월호 추모 집회 때 재(再)등장한 차벽(車壁)과 관련 본지가 지난 15일과 20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13명을 인터뷰한 결과 답변을 거부한 3명을 뺀 나머지 10명의 교수 중 8명은 “경찰 차벽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경찰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경찰 차벽…8명 불법, 1명 합법, 1명 보류=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차벽이 집회 참가자와 일반 청중을 시각적으로 과잉 격리한다는 점 등에서 차벽 자체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집회는 일반 청중이 그 집회를 바라볼 수 있어야 비로소 집회의 성격을 띠는데 경찰 차벽 탓에 집회를 보는 청중의 시각적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며 “이것은 집회 참가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으므로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는 경찰 차벽의 법적 근거는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6조가 유일한데 집회 참가자들의 행진의 경우 이 법을 적용할 수 없어 차벽을 설치하는 법적 근거도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직법 6조는 범죄행위가 목전(目前)이고 생명, 신체, 재산에 중대한 해(害)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상황에 경찰이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이다.
이 교수는 “경직법 6조를 적용하려면 집회 참가자들이 각목을 드는 경우처럼 집회를 당장 해산해야 할 만큼 급박한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지난 주말 행진은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행진이 아니었고 따라서 경직법 6조를 적용할 수 없었다. 법적 근거가 없게 되므로 차벽 설치는 위법인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물론 행진이 사전에 신고가 되어 있지 않을 경우 집시법(집회 및 시위와 관한 법률) 위반을 적용할 수 있지만 집시법 위반이 곧 차벽 설치의 정당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틀린 것이다. 언제까지나 차벽 설치는 경직법 6조에만 근거한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경찰 차벽은 대한민국 최상위법인 헌법(憲法)을 위배하는 불법 행위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차벽은 집회 참가자와 일반 대중을 원천 차단하는 까닭에 집회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일반 대중에게 알릴 기회를 막게 된다”며 “이는 헌법 21조 집회의 자유(모든 국민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침해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또 차벽이 위화감을 조성하고 집회 참가자를 겁박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헌법 10조 행복추구권(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박은정 서울대 교수는 2011년 헌재 판례를 인용하면서 경찰 차벽은 일어난 일에 비해 그 대응수단의 정도가 법 테두리를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 교수는 “형식적으로 지난 주말 집회는 추모 목적이어서 집회 시작 전부터 집회가 폭력적으로 나갈 것이라고 단정하기 힘들었고, 내용적으로도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세월호 유가족과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돼 있었다”면서 “이를 고려할 때 집회 당시 상황에 비해 차벽은 법이 허용하는 직무집행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는 헌재 판단만으로도 경찰 차벽이 불법이라는 점은 충분히 증명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는 “차벽은 급박한 위험이 있지 않는 한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을 무시한 과잉대응”이라고 했고, 송석윤 서울대 교수도 “이미 헌재에서 위헌이라고 판례를 남겼는데 이외 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는 “집회의 자유는 특정한 장소에 접근하고 모이는 것이 성립돼야 하는데 장소를 분리하는 경찰 차벽은 집회의 자유를 상당 부분 제약한다. 오히려 집회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는 불법적 공권력 행사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다수 의견과 달리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집회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이지만 차벽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동원할 수 있다”고 봤다. 이인호 중앙대 교수는 “차벽 자체는 불법이 아니나 현장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장을 본 기자가 판단해보라”며 의견 제시를 보류했다.
▶“질서유지선의 일종” VS “터무니없는 해석”=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집시법을 인용하면서 “차벽은 질서유지선의 일종”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20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차벽은 질서유지선의 일종”이라고 말했고, 서울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집시법상 ‘표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하는 표시나 특징이다. (따라서 차벽은) 질서유지선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논리에 대해 법학자들은 “경찰이 터무니없이 법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시법 2조는 질서유지선을 적법한 집회(시위)를 보호하고 질서유지나 원활한 교통 소통을 위해 집회 장소나 행진 구간을 일정하게 구획해 설정한 띠, 방책, 차선 등의 경계 표지(標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는 “질서유지선의 목적은 교통을 원활하게 하고 집회 참가자를 보호하는 것인데 지난 주말 차벽은 세종대로를 막아 오히려 교통 혼잡을 유발했고, 정서적으로 집회 참가자를 위협한 측면도 있다. 이것은 법이 정한 질서유지선의 역할과는 정반대의 역할”이라고 했다.
최정학 방송대 교수는 “법을 해석하는데 국어사전을 동원하는 경찰의 모습이 놀랍다. 집시법에 나오는 ‘표지’라는 것은 그냥 구별하라는 것이다. 표지는 사람이 통과하지 못하는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질서유지선으로 어떤 표지를 사용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 표지 안팎을 오갈 수 있는 유동성은 전제되어야 한다”며 “표지가 집회 시위자나 일반인의 통행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은 법 조문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아예 경찰 버스를 질서유지선으로 쓴다고 법을 고치던가, 그렇게 법을 고치기 전까지 경찰은 현행법을 따라야 한다”며 “현행 경직법 10조는 경찰 장비를 정해진 용도 외에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 어떤 행동,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버스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법의 원칙”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국회가 만든 법에 따라 직무를 집행해야 할 (서울)청장이 법전도 안 읽고 간담회에 나오는가. 청장이 마음대로 법을 해석하는 것은 자질 부족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은정 서울대 교수는 “집시법에 따르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불편을 끼치는 차벽이 질서유지선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꼭 불법적 수단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경찰은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plato@heraldcorp.com
<경찰 차벽에 대한 법적 의견>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 불법
*서보학-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 불법
*이호중-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 불법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 불법
*박은정-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 불법
*송석윤-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 불법
*최정학-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불법
*송기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 불법
*이인호-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 보류(상황에 따라 판단)
*장영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 합법
*이원우-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 답변 거부
*김중권-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 답변 거부
*김하열-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 답변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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