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남긴 메모 한 장이 정치권을 흔들고 있습니다. 불과 55자에 불과한 손바닥만 한 쪽지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라 불리는 성완종 전 회장이 남긴 메모 속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① 박근혜 선거 조직 운영자
가장 먼저 성완종 메모의 특징은 허태열, 홍문종 등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조직 운영자가 제일 앞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성완종 전 회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서너 차례에 걸쳐 7억 원을 줬다고 말했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이 허태열 전 실장에게 돈을 줬다는 강남 리베라호텔은 2007년 당시 친박계 인사들의 연락장소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1
허태열 전 실장이 돈을 받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사용됐다면,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서 돈을 이용한 선거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허태열 전 실장이 7억 원의 돈을 박근혜 후보를 위한 경선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시효가 지난 '정치자금법'이 아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2를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
▲성완종 전 회장이 죽기 전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 ⓒ오마이TV
|
성완종 전 회장은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게 대선 때 2억 원을 줬다고 말했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은 홍문종 의원이 대선 당시 본부장을 맡았으며, 2억을 줘서 조직을 관리했다고 밝혔습니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친박 최측근 인사입니다. 홍 의원은 대선 때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을 정도로 ‘조직의 귀재’입니다.3 그가 대선 때 조직을 운영했고, 성완종 전 회장이 그 조직을 위해 2억이라는 돈을 줬다면, 대선 때 박근혜 캠프가 불법 자금을 사용했다는 말도 됩니다.
성완종 전 회장의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라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불법 정치자금으로 선거를 치른 셈입니다.
②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현직 지방자치단체장
‘성완종 메모’의 두 번째 특징은 리스트에 있는 사람 중 3명이 현직 지방자치단체장4이라는 점입니다. 성완종 메모에는 유정복 인천시장과 홍준표 경남도지사, 부산시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당시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이었던 OOO씨에게 1억 원을 전달했으며, OOO씨도 “(성 전 회장이 돈을 줬다고) 말씀하신 마당에 (내가) 틀리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필요하다면 검찰에서 밝히겠다” 5고 말했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이 메모에 3명의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을 쓴 이유는 자신이 돈을 줬던 인물 중 파장이 클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의 타격은 그대로 선거에 이어지기 때문에, 현 정권과 여당에 엄청난 부담을 안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노리고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의 이름을 쓰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해봅니다.
③ 액수가 적혀 있지 않은 현 정권 실세
‘성완종 메모’속에는 김기춘, 이병기, 이완구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구체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갔을 시기에 10만 불을 줬다고 적혀 있지만, 이병기, 이완구라는 이름 옆에는 액수가 없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를 주재하기 위해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비서실장과 회의실로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
왜 이완구와 이병기라는 이름 옆에는 액수가 없었을까요? 이완구는 현직 국무총리, 이병기는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현 정권의 실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수사하는 가장 윗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완종 전 회장은 메모를 작성할 때만 해도 한 가닥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를 막아줄 수 있는 인물이 이완구 총리와 이병기 비서실장이라고 믿고 수 차례 그들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습니다.6
만약 ‘성완종 메모’가 죽기 직전에 작성된 거라면, 현직 실세를 향해서는 구체적인 액수보다 더 큰 검은 뒷거래가 있다는 여운을 일부러 남겨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성완종 메모’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러나 죽은 시신에서 나온 증거인만큼 성완종 전 회장의 마지막 인터뷰와 더불어 철저하게 수사를 하다 보면, 진실에 근접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과 한 달 전에만 해도 부정부패와 비리를 뿌리째 뽑겠다며 강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벌어진 ‘성완종 리스트’에 관해서는 단 한 줄짜리 서면 브리핑만 내놓았습니다.7
레임덕이 시작되는 정국을 비리 척결이라는 강력한 칼로 앞서나가던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나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성완종 메모’에 박근혜정부의 국무총리부터 비서실장, 현직 지자체장, 자신의 선거 조직 운영자 등이 대거 연루됐기 때문입니다.
국내 모 치킨회사는 ‘계(鷄)율은 지엄한 법~!’이라며 국내산 치킨을 사용하는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치킨회사조차 약속을 지키겠다는 시대입니다. 대통령이 불과 한 달 전에 비리의 덩어리를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 만큼, 자신의 측근과 상관없이 지켰으면 합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