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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21, 2015

"자살할 이유 없는 유서... 국정원 정상 아니다" [여의도본색] 자살에 이어 '직원일동' 성명서 발표까지

"많이 슬프다."

20일 국가정보원 관계자의 입에서 '슬프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엄격하다는 국가정보기관 직원들이 좀처럼 입에 담지 않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딸과 가족에게 남긴 유서를 보고 많이 울었다"라고도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지난 18일 임아무개 과장의 자살이 국정원 내부에 준 충격은 상당히 컸다.  

동료의 자살이라는 비극 앞에서 슬픔을 느끼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그것을 탓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갑작스런 간부의 자살,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서 발표 등을 보고 있노라면 '현재의 국정원'이 과연 정상적인 정보기관인지를 의심케 한다. 

"어떤 정보기관도 보도자료 통해 해명 안 한다" 해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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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호 국정원장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앉아 있다. 배석은 뒷 줄 왼쪽 부터 이헌수 기조실장, 한기범 1차장, 김수민 2차장, 김규석 3차장.
ⓒ 이희훈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프로그램(RCS)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자, 야당은 지난 14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민간 사찰용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이에 국정원은 "해킹팀사로부터 20명분의 해킹 소프트웨어를 구입했고, 그 용도는 연구용이며, 해외에서 필요한 대상에 사용할 목적으로 도입했다"라고 해명했다.

이날 이병호 국정원장과 김규석 3차장은 국회 정보위 위원들에게 구입 배경과 과정, 용도 등을 제법 상세하게 설명했다. 해킹 프로그램 구입이 민간 사찰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야당쪽 위원들은 국정원의 댓글공작 등의 '전력'을 근거로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라며 국정원 방문을 통한 현장 확인을 주장했다. 

국정원으로서는 '상세한 설명'에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자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방문을 받아들였고, 지난 17일에는 '해킹 프로그램 논란 관련 국정원 입장'이라는 공식 의견서까지 냈다.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일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북한에 관해 하나라도 더 얻어 낼 수 있을까 매일처럼 연구하고 고뇌합니다. 이들의 노력을 함부로 폄하해서도 안 되고, 더구나 국정원이 지켜야 하는 국민을 감시하는 '사악한 감시자'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정보기관이 현안에 공식 의견서를 내는 일이 일반적이지도 많지도 않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정원 입장'이라는 이름으로 국정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만 7건에 이른다. 이는 이명박 정부 5년간 14건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14건 가운데 상당수가 언론보도에 해명하거나 반박하는 '의견서'였던 반면, 박근혜 정부 7건의 대부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국회 정보위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 해킹 프로그램 구입 등 주요 현안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국정원과 관련된 현안이 생길 때마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의견'이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국정원의 대응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침묵하거나 의견 발표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정보기관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정원도 이 공식 의견서에서 "35개국 97개 기관이 이 프로그램을 구입했지만 어떤 정보기관도 이런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스스로도 인정하듯 "정보 역량을 크게 훼손"하는 일일 수 있다.  

잇따른 자살 시도와 자살... 조직 자체에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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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직원들이 20일 오후 용인시 처인구 '평온의 숲' 장례식장에 마련된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 업무 담당 직원 임모 씨의 빈소를 단체조문한 뒤 버스를 타고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정원이 이렇게 공식 의견서를 내면서까지 해킹 프로그램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부인하던 가운데 지난 18일 임아무개 과장이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자살했다. 임 과장은 유서에서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다"라며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라고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임 과장은 이탈리아 '해킹팀'과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해킹 프로그램 구입, 피싱 인터넷주소 제작 등을 문의해온 국정원 직원 'devilangel11004'로 의심받고 있다. 국정원은 임 과장을 "2012년도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실무판단하고 주도한 사이버 전문 기술직원"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임 과장은 국정원 제3차장 산하 과학정보국 연구개발단에서 해킹업무를 총괄해온 팀장급 간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만 가지고 판단하건대 임 과장은 자살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자신이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민간인을 사찰한 일이 없었다면, 즉 국가정보기관의 직원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다면 자살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자살하기 전 진행되고 있던 국정원 내부 감찰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는 있지만, 엄격하게 훈련받는 정보기관의 중간 간부가 자살한다는 것은 국정원 조직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게다가 '전력들'까지 있다. 지난해 3월 22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 조사받던 권아무개 과장이 매형에게 빌린 싼타페 승용차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공교롭게도 자동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한 점이 앞서 언급한 임 과장과 같다. 권 과장은 위조된 유우성씨 출입경기록을 만든 주선양 총영사관의 부총영사로 근무해 간첩 증거조작에 관여했다고 의심받고 있었다.  

각각 북풍 공작을 주도한 혐의와 안기부 특수도청팀('미림팀')을 운영한 혐의로 조사받던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과 공운영 전 팀장이 할복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권 전 부장과 공 전 팀장의 자살기도는 정보기관을 나온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임 과장이나 권 과장처럼 현직으로 있던 정보기관의 중간 간부가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증거들이 확실해서 국정원에 불리한 경우에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오랫동안 취재해왔던 최승호 <뉴스타파> 피디는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의 문제가 노출될 때마다 자살기도나 자살을 하는 것은 조직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국정원 내부에 조직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자살을 부추기는 조직문화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 공동성명이라는 집단행동을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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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전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전날 경기도 용인시 야산에서 자살한 채 발견된 국정원 직원의 유서가 공개되었다.
ⓒ 강민수

국정원 조직의 이상신호는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 19일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로 '동료를 보내며'(3쪽짜리)라는 글을 각 언론사에 배포하고, 다음날(20일)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국정원 직원 일동'은 자살한 임 과장을 "국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무명으로 헌신'한 직원"이라고 추켜세우며 이렇게 당부했다.  

"이 직원은 유서에서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고인의 죽음으로 증언한 이 유서 내용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정치적 공세로 이어가는 소재로 삼는 개탄스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중략) 국정원이 약화되어도 상관없다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국가안보의 가치를 더 이상 욕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며(후략)."

이것은 추도사라기보다는 '성명서'에 가까운 글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이 성명서에 동의했다면 '집단행동'을 벌인 셈이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20일 "대체 어느 나라 정보기관 직원들이 공동성명이라는 집단행동을 하겠는가"라며 "지도부가 직원들을 앞세워 여론공작을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서를 직원 전체에게 회람된 것도 아니었다. 한 직원은 "이런 글을 내는지 전혀 몰랐다"라고 전했다. 최승호 피디는 "직원 일동이 아니라 국정원 고위 간부들이 조직한 보도자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라며 "이 보도자료는 '죽음으로 조직의 문제를 감추는 게 도리'라는 국정원 조직문화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또다른 직원은 "정치권과 언론이 지나치게 국정원을 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우리는 야당과 언론에서 그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해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위기가 내부적으로 강해서 그런 글이 나온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이 직원은 "진실보다는 야권 분열이 예상되니까 내부를 수습하고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이 사건을 끌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고인의 뜻을 왜곡하지 말아 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임 과장은 내부에서만 20년을 근무해 외근하는 사람들과 달리 착하고 순진했다"라며 "잘했나 못했나를 떠나서 본인의 책임을 더 느꼈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컸다"라고 전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자살하고 성명서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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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로 배포된 '동료 직원을 보내며'.
ⓒ 국정원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 간부의 자살, 직원 명의 성명서 발표 등을 보는 전직 직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가안보보다는 조직이기주의가 앞서고 있다는 지적들이다. 

국정원에서 20년을 근무한 A씨는 "내가 근무하는 동안 자살한 사람의 얘기를 듣지 못했고, 직원 명의로 성명서를 낸 경우도 보지 못했다"라며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자살하고 직원 명의로 성명서를 내나?"라고 말했다.

A씨는 "정보기관 요원에게 자살은 있을 수 없고 떳떳하게 일했다면 자살할 이유가 있겠는가?"라며 "정서적으로는 그 직원의 자살을 안타까워할 수야 있지만 정보기관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보부(중정)와 안기부를 거친 B씨도 "내가 근무하는 동안 자살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라며 "그런 경우는 전혀 없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유서를 봤는데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유서다"라며 "당당하게 얘기하면 되지 왜 그런 이유로 왜 자살하나?"라고 꼬집었다.

B씨는 "직원 명의의 공동성명도 있을 수 없다"라며 "직원들이 ('차단의 원칙'에 의해) 자기 일만 하면 되고, 다른 사람의 일을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용도 모르는데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보기관) 직원으로서 의사를 표시한다는 것은 안 된다"라며 "'국민에게 믿어 달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B씨는 "해킹 부분이 드러난 것 자체가 (정보기관의 임무가) 실패했음을 뜻한다"라며 "그렇게 드러나서 실패했으면 (조직 전체가) 책임지고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현재의 국정원은 정상적인 국가정보기관이 아니다"라며 "해외파트 전문가인 이병호 원장이 부패한 국내파트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원훈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다. 과연 국정원은 그 원훈에 걸맞게 조직을 운영해왔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동안 가라앉아 있던 '국정원 개혁'은 다시 점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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