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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11, 2015

집안이 시끄러워야 ‘셀프 정권교체’가 잘 된다

보수정권의 ‘집안싸움’이 표면적으로는 막을 내렸다. 보수여당은 대통령과의 갈등을 벌이면서 ‘이미지 변신’으로 보수정권 유지라는 실리를 챙겨왔다. 이번 유승민의 사퇴는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가 그러했듯, 박근혜 정부에서는 또 다른 당내세력에게 ‘셀프 정권교체’의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다.
“갈라서자.” 1992년 8월, 노태우 대통령은 여당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 후보에게 말했다. 한 달 전 열린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김 후보는 노 대통령에게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대선 이후로 연기하자고 했다. 유력 사업자로 선경그룹이 거론되고 있었다. 노 대통령 사돈 그룹이다. 김 후보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경그룹이 선정됐다. 김 후보는 언론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분노한 노 대통령은 “갈라서자”고 말했다. 결과는 김 후보의 승리였다. 노 대통령은 당 총재직을 김 후보에게 넘겨주고 탈당했다. 김 후보는 문민시대의 개막을 외치며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권은 재창출됐다. 그러나 선거과정은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의 ‘정권교체’였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의 ‘교체’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가지고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느냐.” 2010년 2월, 난데없는 ‘강도론’ 설전이 오갔다.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당시 박근혜 의원이 한 답이다. 이명박 정부는 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계획을 백지화하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신뢰만 잃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친이·친박 대립이 극대화됐다. 분당 가능성까지 점쳐졌다. 그해 6월 세종시 수정안은 부결됐다. 2년 후, 박근혜 의원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뒤 총·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정권은 재창출됐다. 그러나 선거과정은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의 ‘정권교체’였다.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7월 8일, 유승민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기자회견문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며 자기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신보수’라는 정체성으로 현재 권력에 맞선 셈이다. 7월 10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유 전 원내대표는 19.2%로, 지지율 1위에 올랐다. 김무성 대표를 0.4%포인트 앞섰다.

역대 보수정권의 무능에 일격을 가한 것은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었다. 싸움이 격렬할수록 효과는 컸다. 여당은 현 정권 실정의 공동책임자다. 그러나 청와대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김영삼 후보가 그랬고, 박근혜 후보가 그랬다. 선거에서 졌지만 이회창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지난 5월 열린 매시스컨설팅 창립 토론회에서 유권자의 심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대통령 인기가 떨어질 때 여당에 있든 야당에 있든, 그 대통령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차기 대선에서 유리하다. 유권자가 현직 대통령을 싫어한다면 그와 가장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사람에게 유권자는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2012년 대선 직전인 12월 10일 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40.6%의 응답자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정권교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1992년 1월 대권 협의를 하기 위해 회동하는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권에 일격을 가한 것은 야당 아닌 여당
물론 당·청 갈등은 상처를 남긴다. 새누리당은 이번 갈등이 지지층 분열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분당설까지 나오는데 결코 그럴 일은 없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로 일단락됐다”며 분열 가능성을 일축했다. ‘유승민’으로 대표되는 ‘신보수’ 가치도 위축됐다. 청와대와 유 전 원내대표의 충돌에는 노선 차이가 내재돼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중부담 중복지’ 등의 발언으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다. 유 전 원내대표의 ‘신보수’는 총·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복지 공약 축소 및 폐기는 선거를 앞둔 새누리당에는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로 신보수 기치가 같이 꺾인 셈인데, 새누리당이 이를 어떤 형태로 복원할 것인가는 남아 있는 숙제”라고 말했다. 보수 유권자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영남·60대 이상의 지지층이 있는가 하면, 수도권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 보수 지지층도 있다. 야당을 지지했으나 야당의 무능이나 분열에 실망해 돌아선 중도성향 지지층도 있다. 이상일 대표는 “이번 일로 당이 대통령을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며 실망하는 지지층도 있고, 당이 시대적 흐름을 보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만 본다고 실망하는 지지층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망한 지지층을 어떤 방향으로 복원하고 재조직해야 할지가 관건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변화에 필요한 단초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한국 정당시스템은 유권자들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충돌이 전면화되면서 각 당이 누구를 대표할 것이고, 어떤 유권자층을 지지기반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지지기반이 무엇이 됐든 아직 정체성을 형성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이나 여당이 역사적으로 가지고 왔던 지지기반과는 다르다. 김무성 대표가 살아온 이력이나 지지기반도 박근혜 대통령과 다르다. 새누리당 내의 헤게모니 싸움이 격렬하면 할수록 지지기반 변동을 둘러싼 정당 내 시스템 변화가 빨라질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새누리당이 오히려 ‘유승민’이라는 자산을 챙겼다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문에서 ‘헌법’을 언급한 것이 이회창 전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헌법적 총리’의 권한을 요구한 것과 닮았다고 말했다. 이회창 총리가 ‘대쪽 소신’의 이미지를 남긴 것처럼 유 전 원내대표도 ‘정의’의 이미지를 남겼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원래 야당의 자산인데도 이번 일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그 자산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야당 의원이 아닌 유 전 원내대표가 이를 가지고 가면서 야당의 무능과 대비되는 효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반민주주의적 이미지는 청와대와 친박이 가져갔고, 김무성 대표는 리더십은 위축됐지만 과거에 모시고 있던 주군에 의해 부당한 방식으로 당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유 전 원내대표는 사퇴했지만 정치적 자산을 얻고 숨어 있는 재야권력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갈 것이며, 그 결과 새누리당으로서는 과거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당·청 갈등 속에서 “야당은 뭐하냐”
새누리당은 당·청 갈등으로 유승민으로 대표되는 ‘변화에 필요한 잠재적 자산’을 얻었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떨까.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2015년에 발표한 <전투성이 아니라 수권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허한 싸움’을 비판한다. “강경이냐 온건이냐 좌냐 우냐 중도냐 등등 노선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슨 노선이든 간에 그것의 이름으로 내온 결과가 무엇인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간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꼭 노선 갈등,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노선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척해 왔다. 사이비 갈등을 통해 계파간 당권 싸움을 해왔을 따름이다. 하지만 대부분 공허한 싸움으로 끝났다.” 김 교수는 야당이 해야 할 싸움은 공허한 싸움이 아니라 ‘결과를 내는 싸움’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가장 성공적인 반대는 그들이 하겠다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지, 그들을 공격하는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승민의 사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에 반대하면서 시작됐다. 정부가 내놓은 특별법 시행령으로 특별조사위원회의 인원이 축소되고 활동이 위축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특별법은 정치 이슈에서 사라지고 당·청 갈등과 유승민 원내대표만 남았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 전 원내대표가 재의를 부결시키면서 시행령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상일 대표는 정부의 무능과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마저 얻지 못하는 게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최초에 제기한 이슈의 명분을 야당은 스스로 버렸다.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는 거냐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현상의 흐름만 따라갔다. 행정부가 과도한 간섭이라고 반격하면 또 그 흐름에 따라갔다.” 최초의 문제를 잊어버렸는지 용도폐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새정치연합은 반격에 취약해졌다. 최초에 제기한 의제의 명분을 계속해서 끌고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새정치연합이 추구하는 정치가 뭐냐’는 질문에 답할 말이 군색해지게 된 것이다. 유 원내대표 사퇴 이후 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 차원의 움직임은 없다. 7월 8일 대통령의 거부권에 대한 반발로 새정치연합이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 시절 공동발의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그대로 발의한 정도다. 그러나 이 또한 김윤철 교수의 지적대로 ‘공격 그 자체’일 뿐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방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다루고 있다. 농해수위 소속 유성엽 의원은 6월 22일 특조위 활동기간을 세월호가 인양된 후 6개월까지로 보장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활동기간이 1년으로 명시됐는데 예산과 인원문제로 발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그러나 “당 지도부나 당 차원에서 시행령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특조위 활동 문제는 예산 문제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나 당 차원이 아닌 농해수위에서 다루다 보니 여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이 없다. 7월 9일 특조위 예산배정 문제를 지적한 것은 10명이 넘는 기재위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이 아니었다. 특조위에 1원도 예산을 주지 않았다고 지적한 이는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었다. 특조위 관계자는 정치권과 선을 그으면서도 정치가 뒷받침되지 못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정치권은 나름대로 입법권자로서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감시·감독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보완할 책무가 있다. 특조위는 정부 시행령으로 인원과 조직이 축소됐고, 현재 기재부가 예산을 한푼도 주지 않아 활동할 수 없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자기 활동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청와대 앞날은 암울해도 여당은 아니다”
야당이 매번 공허한 싸움만 반복하는 사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챙길 정치집단은 야당이 아니라 유승민 전 원내대표나 김무성 대표가 될지 모른다. 물론 2010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2015년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혹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의 관계를 동일하게 놓고 볼 수는 없다.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에 몸을 낮추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90도 사과 인사를 했듯이 대구·경북이라는, 새누리당의 최대주주를 갖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힘은 아직 막강하다. 그렇지만 ‘끝까지 대통령과 함께 가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새누리당 관계자는 거의 없다. 철저한 표 계산에 따른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힘이 언제 빠질지를 판단 중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총선 끝나면 당과 청은 따로 갈 것이다. 말년의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와 강도는 모두 다르겠지만, 노태우 정부 때 김영삼 후보가,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후보가 그러했듯, 박근혜 정부에서는 또 다른 세력이 ‘셀프 정권교체’를 시도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는 ‘셀프 정권교체’를 준비하는 새누리당의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정권교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40%가 넘을 수 있다. 

반복되는 보수정권의 ‘셀프 정권교체’는 제도화되지 않은 한국 정당, 기울어진 운동장, 이를 강화하는 야당의 무능이 겹쳐지며 만들어진 한국 정치의 착시다. 한국의 정당은 이념적 차이가 불분명하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비슷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보수 유권자들은 현 대통령이 싫어도 새누리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경향이 강하지만 이것이 진보개혁 지지층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대안세력으로서 야당이 신뢰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당이든 야당이든 현 정권과 가장 격렬하게 싸우는 쪽이 야당이 된다. 야당이 공허한 싸움을 반복하면 ‘진짜 싸움’은 여당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새누리당의 상황을 ‘망조’가 들었다고 자조했지만, 청와대의 앞날은 암울해도 당의 앞날이 암울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 전제 중 하나는 “저 쪽이 워낙 못하기 때문”이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현 정권의 실정에 여당이 책임을 면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운영에서 2선으로 밀려났고 청와대가 주도했다고 하면서 책임을 져야 할 여당이 책임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지 못한 것 자체가 여당의 실정이다. 대통령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서 우리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데 안한 것이다. 대통령은 사라져도 당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면하게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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