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1월 1일의 매서운 바람이 기억에 생생한데 벌써 7월입니다. 2015년도 어느덧 절반이 흘러갔습니다.
모두들 올해를 광복 70주년이자 6.15 공동선언 15주년의 뜻 깊은 해로 보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조국통일을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자는 요구가 우리민족이 지나는 길 어귀 문턱마다 샘솟고 꽃피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4년 “통일은 대박입니다.” 발언에 이어 올해 신년사에서도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입니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내란수괴 전두환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새누리당이 집권당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만큼 우리민족의 통일염원이 하늘과 땅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2015년 1월 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년사에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리유가 없습니다.”라며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정말 차갑습니다. 계절과 달리 흘러가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1) 통일을 문전박대한 박근혜 정부
올해 상반기, 통일의 기대와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은 박근혜 정부에 의해 그야말로 문전박대의 수모를 당했습니다.
남북관계 파탄의 진원지는 미국이었습니다. 1월부터 인권재단(HRF)이란 이름의 미국인들이 전면에 나서서 대북전단을 살포하였습니다. 미국은 북한 최고지도자를 조롱한 영화를 제작해 그 DVD를 전단으로 살포하겠다고 했습니다.
대북전단은 대륙(북쪽)에서 해양(남쪽)으로 바람이 부는 1월달에는 북쪽으로 날아가기 어렵습니다. 전단살포는 누가 보아도 남북관계 개선을 막으려는 정치적 술수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황당하게도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대북전단을 막지 않았습니다.
전단광풍이 지나가고 남북관계 개선의 기재기를 켜나 했더니 이번에는 키리졸브 광풍이 몰려왔습니다. 3월 2일, 미국은 대북전쟁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을 강행하자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 또 맹종맹동하였습니다. 키리졸브 훈련에서는 2014년부터 <맞춤형 억제전략>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보기에 북한의 핵무기 사용이 임박했다는 판단이 들면 북한을 먼저 공격할 수 있다는, 매우 자극적인 내용입니다.
입장을 바꿔서 만일 중국이 매년마다 북한군과 “한반도 유사시 서울점령 계획”을 훈련하는데 “유사시에 대비한 연례적 훈련일 뿐”이라고 변명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까요?
남북관계에 세 번째 찬물은 5월이었습니다. 5월이 되자 모스크바 전승기념일 행사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줄을 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간다면 남북정상간 상봉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도 오바마 행정부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벤 로즈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개별 국가들이 스스로 판단하겠지만 미국의 동맹이란 차원에서 보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마디 언급하자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자연스레 무산되었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네 번째 찬물은 통일부가 나섰습니다. 통일부는 5월초. 6.15 민족공동행사의 실무회담 하루 전에 실무협의 당사자를 만나 “815 서울개최”를 들이밀었습니다. 정부의 회유와 압박은 6.15 민족공동행사를 준비하는데 상당한 애로를 발생시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첩보수준의 “현영철 처형설”을 공개할 것을 지시했고 자주통일의 길에 민족공조를 약속했던 6.15 15주년의 그 날에, 하필이면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며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예정했습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이 아니라 통일을 문전박대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따랐습니다. 미국만 쳐다보고 통일을 문전박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통일대박론”이 아니라 “통일박대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6월 15일 북한 정부 성명
남북관계 개선을 원치 않는 미국과, 미국만 쳐다보는 박근혜 정부에 의해 201년의 상반기가 흘러가버리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을 맞는 6월 15일, 북한은 공화국 정부성명을 통해 남북관계의 전환적 국면을 열자고 다시금 제의하였습니다.
북한은 성명에서 6.15 공동선언이 계속 이행되었다면 남북관계에서 실로 놀랄만한 발전이 있었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계속된 남북관계 파탄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며 이 비정상적인 사태를 바로잡고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기 위해 남북관계의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오자고 하였습니다.
북한의 6월 15일 공화국 정부성명은 눈앞의 몇몇 실무사안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과 나아가 통일문제 전반에 대한 북측의 총론적 입장을 천명한 것이었습니다.
성명은 남북관계 개선의 첫째 요구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요구는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께서 2000년 6.15 공동선언 제1항에서 합의한 사안입니다.
동북아 패권유지를 위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한반도 통일보다 한반도 긴장고조와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온 세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남북통일을 싫어하고 남북대결을 추구하는 미국에게 통일문제를 맡긴다는 것은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북핵폐기를 내걸고 틈만 나면 워싱턴을 찾아 한반도 문제를 상의하였습니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갖게 되었는데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미국을 겨냥한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하니 남북관계가 개선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은 둘째로 남북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고취하는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말하여 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서”라고 하였는데 이 대목이 흡수통일로 보이는 것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3월 10일, ROTC 강연에서 “통일 과정에는 여러가지 로드맵이 있으며 비합의 통일이나 체제 통일에 대한 팀이 우리조직(통준위)에 있다"면서 "정부 내 다른 조직에서도 체제 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체제 흡수 통일은 하기 싫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면서 흡수통일 준비팀이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흡수통일은 북한정권을 붕괴시키고 북한의 영토와 주민을 대한민국에 흡수하는 통일입니다. 북한체제가 한국과 다르고 더구나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정권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핵전쟁의 위험성을 초래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이상, 아무리 “통일대박”을 외쳐도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없습니다.
북한 성명은 셋째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미국과 야합하여 벌리는 북침전쟁연습으로 규정하며 이를 중단할 것을 언급하였습니다. 민족이 대화하는 마당에 외세를 끌어들인 총은 좀 내려놓자는 것입니다. 지금 한미 군당국은 8월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예정되어 있는 등 1년 365일 마다 “철통같은 방위태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키리졸브> 훈련은 세계 최대의 군사대국인 미국과 연간 40조원에 육박하는 국방예산을 쏟아붓는 한국정부가 벌이는 세계 최대규모의, 세계 최장기간의 군사훈련입니다.
미국 전쟁영화를 보아도 적군과 싸우다가 대화를 할 때에는 대화 전에 “Put the gun down.”이라 말하고, 서로 총을 내려놓을 확인한 후에 대화를 시작합니다. 미국은 자기네 영화에서는 대화 전에 총을 내려놓으면서, 왜 휴전선에서는 이를 거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성명은 넷째로 남북관계 개선에 유리한 분위기를 마련해 나가기 위해 비방중상을 그만 두자고 하였습니다. 올해 1월부터 미국인이 나서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북한인권사무소를 준비하는데 이를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한 비방중상도 표현의 자유라며 제지하지 않습니다만, 이는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의 심리가 반영된 것입니다.
만일 한국의 어떤 언론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피부색을 차별하는 전단을 미국에서 살포해서 미 대사관이 정식 항의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박근혜 정부는 과연 이를 “한국사회의 특성”이며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로 미 대사관을 설득할까요?
결국 북한당국은 자신들이 박근혜 정부로부터 대화상대로서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명은 마지막으로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세계는 새로운 세기에 맞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는데 한반도에서만 군사적 대결로 민족의 재부가 허망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5월에도 모처럼의 6.15 민족공동행사가 통일부의 회유협박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6.15 / 10.4 선언에서 합의된 남북교류협력은 정말 시급합니다. 특히나 경제협력과 관련한 실천적 조치들은 북한 뿐만 아니라 남한경제를 위해서도 당장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6.15 공화국 정부성명의 5가지 요구를 “남북대화를 파탄내기 위한 생트집”으로 보아야 할까요? “남북대화의 최소 전제조건”으로 보아야 할까요?
3) 대결 프로세스를 택한 박근혜 정부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대북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첫째, 정부는 북한의 공화국 정부 성명을 “대화파탄을 위한 트집”정도로 치부하였습니다. 통일부 홍영표 장관은 북한의 6.15 공화국 정부성명을 두고 “여전히 여러 전제 조건을 붙인 것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말은 북한이 진심으로 대화의 진정성이 있다면 그 무슨 전제조건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곧바로 대화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미연합군에게 “Put the gun down”을 요구하지 말고, 지금 당장 앞으로 걸어 나오라는 것입니다. “Put the gun down”을 자꾸 요구하는 것을 보니 대화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박근혜 정부는 6월 23일, 서울에 북한인권사무소를 정식으로 열었습니다. 북한이 요구했던 비방중상 중단요구를 그대로 묵살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북한도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비방중상 당하는 감정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북한인권사무소 개설과정에서도 국가보안법을 거론해 빈축을 샀습니다. 작년 유엔 총회에서 올해 3월에 열기로 했던 북한인권사무소가 6월로 연기된 것은 다름아닌 국가보안법 때문이었습니다. 유엔은 북한인권사무소에서 “인권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제시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이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인권활동이 순수인권활동이 아닌 정치활동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한 가지 추가한다면 6월 24일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도 정부의 대북대결입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SBS> 보도에 따르면 “연평해전”의 좌석점유율이 52.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어떻게 무려 1013개의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연평해전” 영화에 대한민국이 동원된 느낌입니다. <SBS>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연평해전 통장”을 출시하였고 국방부 합참 해군사령부에 이어 해군은 모든 부대에서 외부 단체 관람에 나섰다고 합니다.
이 현상은 “잊지말자 공산당”을 외치던 박정희 정부 시절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제 곧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반공글짓기”, “반공웅변대회”, “반공음악회”가 반강제적으로 열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선전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북한의 대화제의를 무시하고,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북한인권사무소를 개설하고, 남북대결영화를 홍보하는 것이었던가요?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신뢰 프로세스”가 아니라 “대결 프로세스”입니다.
결과적으로 2015년의 절반이 지난 지금,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예측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남북관계를 이렇게 허망하게 유린한 것이 누구인가요?
4) 박근혜 본심은 남북대결
615 민족공동행사가 무산된 데 이어 북측에서 발표한 공화국 정부성명도 미국과 박근혜 정부에 의해 사실상 문전박대 당했습니다.
6월 25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하고 “반미투쟁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공표한다”면서 “미국은 흰기를 들고 나오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와 함께 “범세계적인 반미대결전에 떨쳐나설것을 세계에 호소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북한도 미국에게 “Put the gun down.”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은 주범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흰기”를 요구했습니다. 대결과 대화의 투 트랙이 아니라 투쟁단계의 상승을 말했습니다.
이제 북한을 바라보는 박근혜 정부의 본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통일대박”이 겉모습이었다면 본심은 “통일박대”였습니다. “신뢰 프로세스”가 겉모습이었다면 본심은 “대결 프로세스”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30일, 전군 지휘관들과 오찬에서 "지금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사출시험 등 위협을 계속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공포정치가 계속되면서 어떤 도발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대북경계태세 강화를 주문했습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6월 30일, 전반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북 도발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만약, 적이 제2연평해전처럼 무모하게 도발한다면 그 동안 수없이 천명한대로 적 도발 원점은 물론, 지원세력 및 지휘세력까지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본심은 1월 1일이 아니라 6월 30일에 드러난 셈입니다.
북한의 6월 15일 공화국 정부 성명은 한국정부에 대화를 호소한 것이었다면 6월 25일 국방위원회 성명은 미국과의 대결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상반기가 저물도록 쉴새없이 통일박대론과 한반도 대결 프로세스를 고집해 온 결과입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망국적 주문에 맹종맹동해 온 결과입니다.
곽동기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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