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정보사업 참가자들 관련경력 없고 외국어 전공자 1명뿐… 월 인건비도 파격적으로 고임금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엉터리’ 글로벌 정보사업(<주간경향> 1141호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 마무리되면서 갈수록 의문이 더해가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용역 참여자들이 국정원 댓글알바 조직으로 의심된다는 지난 2월 <경향신문> 보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은 국정원과의 연계설 자체가 터무니없어 수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공기업의 전형적인 예산낭비 사례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해명은 필요하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글로벌 정보사업의 1·2차 용역 참여자들을 보면 관련 경력이 전무하거나 일정한 직업도 없이 떠도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고졸자들도 포함돼 있다. 석·박사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KTL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펙을 가진 조직에 15억원의 예산이 편성된 사업을 맡겼을까. KTL은 용역 진행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뒤늦게 시인하고 용역대금 중 잔금은 지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급한 착수비용에 대한 회수는 시도하지 않고 있다.
수상한 것은 KTL뿐만이 아니다. 기획재정부나 감사원은 공공기관의 심각한 예산낭비 실태가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이 모든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추정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국정원의 존재다. 이 점에서 “15억원의 예산 배정 과정에서 국정원의 개입이 없었다면 사업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남궁민 전 KTL 원장의 증언은 설득력이 있다.
‘전 세계 268개국, 340개 언어에 해당하는 산업정보를 수집해 기업 CEO들에게 판단과 예측이 가능한 정보로 가공하여 실시간 지원함.’
KTL 수석연구원 최모씨가 지난해 7월 글로벌 정보사업을 발주하면서 내부문서 기안을 위해 작성한 사업 목적이다. 이 내용을 보면 용역 참여자들은 외국어 특기자, 해외기업 동향분석 전문가, 정보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정보통신(IT)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KTL이 내부심사를 거쳐 승인한 용역 참여자 이력을 보면 도저히 이 같은 전문용역을 수행할 집단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국정원 댓글부대로 의혹을 받고 있는 KTL 글로벌정보사업 용역 참여자들이 지난해 7월 워크숍을 하면서 찍은 사진. 용역 참여자들 중 대부분은 관련 경력이 없었고 외국어 전공자도 한 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최종 보고서 제출 시 용역 참여자 명단에는 고졸 출신 2명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의 몸값은 월 최고 1500만원까지 책정됐고, 고졸 출신 개발자 인건비도 420만원으로 계산됐다. |
공공기관의 심각한 예산낭비 방치용역 참여인력 조직표를 보면 국가전략연구소 소장 민모씨(46)가 사업 총책임자이며, 업무컨설팅 분야와 시스템커스터마이징 분야 각 8명 등 모두 16명이 참여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 가운데 스스로를 국가정보기구 출신이라고 한 민 소장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용역사업 참여자 중 글로벌 용역사업을 수행할 전문인력으로 인정할 만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1차 업무컨설팅 분야 용역직원들의 학력을 보면 민 소장 아래 부책임자급에 해당하는 김모씨(44)는 경동대학 경영학과를 나와 국군정보사 정보팀에서 1991~2012년까지 10년가량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경력이 없다. 매니저로 불린 김모씨(43)는 고려대 석사 출신으로, 이력서에 2002년부터 4년간 KT 경영전략 수립에 참여한 것으로 나오지만 은행빚 3000만원을 갚지 못해 사무실로 소장이 날라오는 등 생활이 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용역팀 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경상대 강사 경력이 있는 박모씨(39·여)가 유일하다. 하지만 박씨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구인광고 보고 네 번 정도 면접 보러간 적은 있지만 용역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내 이름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고졸 개발자 월급도 420만원340개 언어로 전 세계 268개국의 산업정보를 수집한다는 사업의 용역 수행자 중에 외국어특기자는 외대 체코어학과를 졸업한 장모씨(31)가 유일했다. 그나마 장씨는 해외기사 번역과는 무관한 일을 했다. KTL이 용역사업을 감독하기 위해 파견한 정모 본부장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남궁민 전 KTL 원장이 지난해 6월 그만두기 직전 공금횡령건으로 중징계를 지시했으나 가벼운 감봉처분만 받고 살아남아 용역사업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그는 ‘외국어 특기자가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민 소장이 60개 언어를 해서 문제가 없다”며 비상식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운영시스템 구축을 맡은 팀원들도 의문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KTL로부터 용역을 수주한 그린미디어 사장 박모씨는 시스템 구축의 팀장(PM)을 맡은 김모씨(42)에 대해 “관련 경력이 18년이고 이 분야에서 가장 손꼽히는 실력자”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KTL에 제출된 김씨의 이력은 서초구 보안등 관리, 초등생 독서관리, 아파트 종합관리, 제주삼다수 생산관리 등 글로벌 기술정보업무와는 먼 경력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머지 팀원들도 석사 이상은 없고 출신학교도 상지대, 전주공업대, 전주비전대, 동원대, 성결대, 영진정보대 등 취업난이 심각한 지방대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2월 KTL에 최종 용역 결과를 보고할 때 제출한 시스템 개발자 명단에는 고졸 출신 2명도 끼어 있었다.
그린미디어가 올해 2월 KTL에 최종 용역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첨부한 용역 참여자 명단의 하나. 이력서에 보면 최종학력이 고졸로 나와 있다. 견적서상 이들 고졸 개발자 인건비는 420만원으로, 초급감리사보 공식노임단가(330만원)보다도 90만원이 높게 책정됐다. |
그린미디어가 본격 용역 수행 시작에 앞서 지난해 7월 KTL에 제출한 견적서를 보면 월 인건비로 업무컨설팅 쪽은 총괄PM(1명) 1500만원, 수석 업무컨설턴트(1명) 1300만원, 선임 업무컨설턴트(2명) 1050만원, 주임 업무컨설턴트(1명) 900만원, 업무컨설턴트(1명) 800만원이 책정됐다. 시스템 구축 쪽은 기술PM(1명)이 650만원, 선임개발자(1명) 490만원, 주임개발자(4명) 420만원, 개발자(2명) 420만원으로 인건비가 계산됐다. 이들의 인건비는 정부의 공식노임단가와 비교해봐도 파격적인 액수다. 2015년 수탁·감리용역의 경우 최고등급의 기술사 노임단가는 864만원인데 민 소장은 몸값으로 그 두 배인 1500만원이 책정됐다. 정보기술분야 경력이 전무한 시스템운영팀장 김씨의 노임단가도 특급 수석 감리사(630만원)보다도 20만원이 더 높게 평가됐다. 고졸 출신 개발자 몫으로 책정된 420만원도 초급 감리사보(330만원)보다 100만원가량 많은 액수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액의 인건비가 책정된 용역팀원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했을까. 용역팀 중 해외기업 관련 외신기사를 번역하거나 분석해 서버에 올린 일은 성균관대 법학과 박사과정의 김모씨(35)와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최모씨(34) 등 2명이 전담했다. 그린미디어는 두 사람을 수습기자로 채용할 것처럼 뽑아서 실제로는 용역사업에 투입시켰다. 결국 최씨와 김씨는 4개월 동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KTL 별관 사무실에서 기자 업무와 무관한 용역업무만 담당하다 나왔다. 두 사람은 “사무실에서 서버에 외국 기사를 번역해 콘텐츠를 올리는 일은 우리 둘만 했고, 나머지 팀원들은 하루 종일 국정원 댓글부대로 의심되는 이상한 일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 소장 팀원들은 한두 명만 빼고 모두 살고 있는 곳이 잠실 주변이었다. 이들의 집단거주지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인터넷 IP를 관리하는 인터넷진흥원이 있었다. 최씨와 김씨는 “첫날 신입사원 중 한 명이 그만두자 그린미디어에서 고액연봉을 제시하고 민 소장은 ‘이 사업은 댓글부대와 아무 관련 없는 사업’이라고 했다”며 “(민 소장이) 왜 그 상황에서 갑자기 댓글부대 얘기를 꺼냈는지 지금도 의아하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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