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이후 원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부터 보수언론이 탈북자 등 출처가 모호한 소스를 근거로 북한소행설을 추정해왔으며 ‘3일만 참아주면’과 같은 전쟁불사론을 펴온 반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적해왔다는 연구논문이 나왔다.
김상균 전 MBC PD가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언론매체전공)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보수언론의 천안함 침몰 사건의 보도에 관한 사례 연구-원인 프레임의 심층 분석을 중심으로-’는 지난 7월 심사에 통과해 지난 28일 언론에 공개됐다.
이 논문은 지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2015년 4월 30일까지 천안함 사건 관련 조중동의 모든 기사를 대상으로 각종 유형과 특징을 분류하고 기사에 담긴 함의를 분석했다.
김 전 PD는 조중동의 지난 5년간 천안함 보도에 대해 △‘적대적 공생관계론’과 ‘안보상업주의’에 의해 ‘북한 소행설’을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 프레임으로 추정·예단하고 확정했으며 △사건 발생 초기부터 ‘북한 소행설’을 추측 및 예단했고 △북한소행설 이외의 대항적 프레임(기뢰, 좌초, 충돌 및 과학적 반박)에 대해 왜곡하거나 축소·배제했다고 평가했다.
조중동의 첫 보도는 천안함 침몰원인을 파공으로 전했으나 금새 지면에서 사라졌다는 점이 지적됐다. 김 전 PD는 “2010년 3월 27일자 보수신문 3사 보도는 ‘밑바닥 파괴’(조선), ‘배 밑바닥 구멍’(중앙), ‘선미 구멍’(동아) 등 파공을 사건의 원인으로 제목을 뽑았다”며 “그러나 파공은 곧 지면에서 사라지고 어뢰와 기뢰가 가장 빈번하게 보도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의 최초 보도인 YTN의 제1보도 좌초 또는 충돌론이었다는 점도 언급됐다. 김문경 YTN 기자는 2010년 3월 26일 밤 10시24분 ‘YTN투나잇’에서 “사고와 관련해 군 당국으로부터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해군 초계함이 ‘뭔가에 충돌한 뒤에 뭔가에 부딪힌 뒤에 충돌’한 것으로 군 관계자가 전하고 있다”며 “뭔가에 충돌한 부분이 바위에 충돌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에 충돌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고 김 전 PD는 강조했다.
조선일보 2010년 4월 22일자 4면 | ||
이후 조중동의 보도는 북한 소행설로 가져가기 위해 출처가 불분명한 탈북자를 인용했다고 김 PD는 지적했다.
-<“북, 자폭임무 ‘인간어뢰’부대 있다”>(동아 2010 3월 29일자 6면) : 탈북시인 장진성씨 주장
-<북 해상저격부대 소행 가능성 제기>(조선 3월 30일자 5면) : 고위탈북자들 “기뢰 매단 2인용 잠수 어뢰정 타고 침투 땐 감지안돼”
-<‘북 인간어뢰’ 바닷속 자살폭탄>(조선 4월 22일자 주용중 유용원)
-<북 해상저격부대 소행 가능성 제기>(조선 3월 30일자 5면) : 고위탈북자들 “기뢰 매단 2인용 잠수 어뢰정 타고 침투 땐 감지안돼”
-<‘북 인간어뢰’ 바닷속 자살폭탄>(조선 4월 22일자 주용중 유용원)
: 탈북시인 장진성씨는 “북한의 인간어뢰부대는 잠수함 승조원들보다 우대 받고 있으며 모든 훈련이 자폭위주로 돼 있다”고 보도
이를 두고 김 PD는 “남북관계가 극도로 적대적일 때마다 대북정보의 기근현상을 겪는데, 이럴 때마다 북한 보도의 정보원으로서 탈북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가장 논란이 된 인간어뢰 공격설 기사의 경우 탈북시인 장진성을 비롯한 탈북자들을 정보원으로 인간어뢰 부대가 천안함을 공격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LA타임즈와 같은 외신에선 “한국 배의 침몰과 관련, 제임스 본드 이론들이 떠오르고 있다”고 풍자하는 보도도 있었다.
이를 두고 김 전 PD는 코바크 로젠스티엘이 그의 저널리즘 관련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2007/2009 141~142)에서 “절대로 없었던 것을 추가하지 말라, 절대로 수용자를 속이지 말라, 당신의 방법들과 동기에 대해 최대한 투명하라”고 경계한 것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PD는 조중동이 천안함 침몰원인 키워드인 어뢰 기뢰 좌초 등을 비교한 결과 초기 나흘간은 기사에 기뢰라는 단어가 어뢰보다 많이 등장했지만 그 이후부터 어뢰의 빈도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김 PD가 천안함 사건 제1국면으로 설정한 2010년 3월 27일부터 4월 26일까지 천안함 기사에 ‘어뢰’가 등장한 빈도는 조선이 135회, 중앙 111회, 동아 82회인 데 반해 한겨레는 68회였다고 전했다. 기뢰의 경우 조선 114회, 중앙 87회, 동아 69회, 한겨레 71회인 반면, 좌초의 경우 조선 13회, 중앙 12회, 동아 10회, 한겨레 9회였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건 발생 나흘간 조중동의 천안함 사건 보도엔 원인진단과 관련해 기뢰폭발 가능성 등 몇가지 원인과 원인진단에 관한 신중설, 북 공격 가능성, 버블효과, 북한 인간어뢰 등 다양하게 보도됐다고 김 전 PD는 전했다. 동아일보는 3월 27일자 <백령도 인근서 폭발로 선미 구멍>에서 “군과 정부는 북한의 어뢰 공격가능성은 적다면서도 북한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천안함 침몰후 초기 사흘간로 좁힐 경우 조중동의 침몰원인 보도에선 어뢰보다 기뢰가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할 대상이라고 김 전 PD는 전했다. 그가 집계한 3월 27일부터 4월 3일까지 천안함 보도 중 어뢰 좌초 기뢰를 사용한 빈도의 추이를 보면, 3월 29일엔 어뢰의 경우 총 25회(조선 10, 중앙 9, 동아 6 - 한겨레 4), 기뢰의 경우 27회(조선 11, 중앙 9, 동아 7 - 한겨레 7)였다. 30일엔 어뢰 15회 (조선 7, 중앙 6, 동아 2 - 한겨레 1) 기뢰 30회(조선 11, 중앙 8, 동아 10 - 한겨레 5)였으며, 31일엔 어뢰 11회(조선 6 중앙 2 동아 3 -한겨레 2) 기뢰 17회(조선 8, 중앙 4, 동아 5 - 한겨레 5)였다. 김 전 PD는 “사흘에 걸쳐 연이어 어뢰보다는 기뢰가 천안함 외부 공격설의 수단으로 언급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4월 들어서부터 어뢰의 잔해(파편)를 찾아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는 기뢰의 경우 공격의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김 전 PD는 ‘아이서퍼’로 검색한 결과 천안함 보도 중 ‘파편’이라는 키워드를 지닌 기사 수가 4월 2일부터 5월 14일까지 조중동에서 120개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천안함 사건이 당시 지방선거를 전후로 조중동의 안보상업주의 또는 이른바 ‘전쟁불사론’으로 이어진 점도 도마에 올랐다. 조선일보는 그해 5월 24일자 31면 오피니언면 <국민의식, 천안함 이전과 이후>에서 “천안함 테러는… 안보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해온 한국인들에게 던져진 경고”라고 주장했다. 또한 중앙일보의 경우 김진 당시 논설위원이 같은 날짜 <김진의 시시각각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에서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천안함이 피격된 만큼 잠수함 기지를 응징하는 것은 정상적인 나라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정상적인 선택. 정의를 실행하려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에 대해서도 김 전 PD는 주목했다.
천안함 함미 | ||
이에 반해 북한소행설을 반박하는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으며 종북몰이의 대상이 된 점도 조중동 보도의 특징이었다고 김 전 PD는 분석했다. 그는 “서재정 이승헌의 백색 흡착물질 반박, 신상철의 스크루 변형, 러시아보고서의 좌초 후 기뢰설, 안수명의 어뢰가능성 희박 문제제기 등 이들 집단 지성의 합리적 의심이나 과학적 문제제기는 보수언론에 의해 축소 왜곡 배제되거나 보도되지 않았다”며 “최종보고서와 다른 이견을 제기한 집단 지성은 ‘종북몰이’의 대상이 됐다”고 썼다.
이와 관련해 김 전 PD는 기자 PD 등 현업언론인과 대북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김 전 PD의 논문에 수록된 지상파 방송사의 정치부기자 D씨는 “현장에 있는 기자들의 고민이 그런 거였던 것 같다”며 “북한에 대한 너의 태도는 무엇이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온한 것처럼 느껴지는… 북한을 매개로 하는 저널리즘의 본질 문제가 돼 버렸다”고 고백했다.
중앙일간지 미국특파원 출신의 정치부 기자 F씨는 “정부가 발표한 견해와 다를지라도, 합리적으로 의문점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일단 제시해주는 것이 잠정적인 역할”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끝까지 추적을해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그냥 딱 내용 알 것도 없고 북쪽이 했다고 해야만 여러 가지로 설명이 잘되고 자기네들끼리 단결할 수 있다는 것만 갖고도 북한 소행이 돼 버리는 것”이라며 “정치판에서는 실체적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정부에서도 보수정권인 경우 맘놓고 하고 또 언론이 도와주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니까”라고 분석했다.
특히 최상훈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트리뷴 기자는 천안함 최종 보고서를 보고도 단정적으로 보도할 수 없었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왜 북한 잠수함이 쏜 어뢰에 피격됐다고 쓰지 않느냐’는 크리스토퍼 넬슨의 리포트(UPI 출신 기자가 발행하는 사설 유료 이메일 정보지) 내용에 대해 답장을 보냈다. ‘나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북한이 했다고 쓰지 않는다. 단지 남한과 다른 나라들이 북한이 했다고 말한다고 쓴다. 인양된 어뢰추진체가 해당하는 사건의 어뢰추진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여러 사람이 있지만, 그 어뢰가 북한 어뢰라고 해도 누가 현장에서 총을 발견했다고 하는 거지, 총을 쐈다는 증거는 없지 않느냐… 북한의 잠수함이 어뢰를 쏴서 천안함이 피격됐다는 증거가 ‘갖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이렇게 볼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식이다… 제대로 된 기자라면 한국과 미국이 주장한다는 걸로 쓸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내가 그 결론을 믿느냐 안믿느냐 그건 별개의 문제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답변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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