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US

CONTACT US

Click here !! for Mobile Phone Cases

Click here !! for Mobile Phone Cases
Mobile Phone Cases

World Clock

Sunday, August 9, 2015

권역별비례대표제 vs 국민공천제…김무성 勝 [전쟁史로 보는 정치 4] 지금은 탱크에 시멘트를 바를 때가 아니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 소련군의 주력전차인 T-34에 대항하던 독일군은 이 전차를 깨트릴 자기흡착식 지뢰를 개발한다. 쉽게 말해 자석이 붙은 대전차 지뢰인데 이것을 들고 전차에 접근해서 전차에 ‘철커덕’하고 붙인 뒤 도망치면 수초 후 폭발, 한 방에 적 전차를 무력화 시키는 효과적인 보병용 휴대 대전차 무기였다.
▲자기흡착지뢰 HHL-3(Hafthohlladung 3)의 실제 사용방법을 보여주는 사진. 훈련시 모습으로 생각된다. 사진의 병사는 뇌관을 당기는 중이다(당기고 도망가면 알아서 터진다   © 임두만
그러나 보병이 이걸 들고 전차에 다가가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만큼 전차는 보병에게 있어 일종의 악마와 같은 무서운 존재이다. 하지만 소련과의 다량생산이 가능한 T-34의 무제한 소모전에 휘말려 전차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군은 이런 무기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지뢰의 총생산량이 55만개로 결코 적지 않은 수량이라는 사실도 당시 독일이 처한 상황과 이 무기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

그런데 만족해하던 독일군은 이내 고민에 빠진다. 전쟁 중 쓸만한 적군 무기 베껴 만들기는 시험의 컨닝과 달리 절대로 부정행위가 아니다. ‘이 좋은 무기를 소련놈들이 똑같이 만들어 그나마 씨가 마르고 있는 우리 전차를 부셔버리면 어떡하지? ’ 게르만 족 특유의 완벽주의는 곧바로 해결책을 내 놓는다. ‘그래, 전차에 자석이 붙지 않게 하면 되겠군.’ 쇳덩어리 전차에 자석이 붙지 않게 하려면? 독일군은 전차 표면에 반자성 물질-일종의 시멘트를 바르기 시작한다.

▲리트 코팅. 마치 빗살무늬 토기를 보는 느낌. ©임두만
2차 대전 독일 전차의 상징 중 하나인 찌메리트(zimmerit) 코팅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1943-44년 중반 사이 생산된 독일 전차는 물론, 기타 장갑차량에도 찌메리트 코팅은 널리 적용된다. 그런데 독일군의 이런 완벽한 대비책은 과연 독일군 전차들을 ‘짝퉁 자기흡착 지뢰’의 위협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해 주었을까?

천만에, 답은 ‘전혀 아니다.’ 였다. 이유는 독일군의 대비책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독일군과 싸우는 어느 나라 군대도 독일군이 명품 무기라고 생각했던 자기흡착 지뢰를 만들 생각조차 안 했었다. 상대가 고려하지 않는 작전을 미리 짐작한 실패작이다.

소련은 주력전차인 T-34를 풀빵 찍듯이 만들어서 벌떼 수준의 전차부대로 독일군을 압박하는 중이라 어쩌다 나오는 독일 전차를 보병에게 맡길 이유가 없었다. 서방 연합군은 보다 우수한 로켓식 대전차 무기인 ‘바주카 포’와 압도적인 공군력이 있었기 때문에 역시 자기흡착 지뢰 따위 무기를 개발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결국 전차에 시멘트 바르기, 찌메리트 코팅은 독일군의 어이없는 ‘삽질’로 끝나고 만다. 안 그래도 비효율적이던 독일의 전차 생산에 찌메리트 작업은 결코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었고, 자체 무게가 100-200kg에 달하는 찌메리트의 무의미한 하중 추가는 전차의 연비와 기동성에도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 전차병들에게 찌메리트 코팅은 그저 ‘보호가 되겠지’ 하는 수준의 심리적인 안정감 밖에 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교훈은 나의 목숨을 노리는 상대의 시각으로 나를 관찰하며 내 단점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각으로 내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적이 선택할 수 있는 공격 방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살아남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안전기준만 충족하면 그만이라는 자기만족이 더 우선시 되었다는 거다.

현 야당의 전략은 보고 또 봐도 독일군이 70년여 전에 보여 준 탱크에 시멘트 열심히 바르기 삽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언제나 자기들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권적 사고…’상대는 나쁘고 나는 옳아’의 도그마가 계속 그 삽질을 유도한다.

어차피 여권이나 야권이나 지금 시점에서 충성도 높은 지지자를 빼앗아 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지지층 다지기가 더 우선이다. 즉 내편은 확실하게 다져두는 작전, 김무성이 미국에 가서 절하고 읍소하는 것을 야권은 비판하지만 김무성으로선 내편다지기의 확실한 작전이었다. ‘아생연후살타’는 바둑용어만이 아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여권은 지금 현재의 야당을 전쟁 상대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소련군과 연합군이 독일의 대전차 전투전술에 압박감을 느끼지 않은 것과 같다. 연합군은 독일이 아무리 잔머리를 써서 자기흡착식 지뢰개발이니 찌메리트 코팅같은 것을 생각해내서 하더라도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소련은 대전차 물량공세로 독일을 제압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미국이 이끄는 미영불 연합군의 대해대공 장악은 독일의 전략을 두려워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2차대전 말기는 사실상 연합군내 미국과 소련의 자기편다지기 우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2차대전이 독일 일본 이태리의 패망으로 끝난 뒤 국제사회는 곧바로 미소양강의 냉전체제로 접어들면서 소련을 축으로 한 동구공산권 대 미국을 축으로 한 비공산권 대치상태로 바뀐다.
▲김무성의 자신감있는 행보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금 여당을 보면 당시와 흡사하다. 이미 야권은 상대가 아니다. 여권 내 기득권을 쥐는 전쟁이 더 급하다. 김무성의 미국방문 시 행보는 바로 이를 초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여권 지지층 내 친미 보수세력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두려는 작전...잠재적 경쟁자들이 개혁진보를 말할 때 더 확실한 우측보행을 하므로 우측의 장자임을 각인시키려는 작전이다.

이를 비교하면 문재인은 어떤가? 문재인이 벌이는 작전은 오직 하나. 상대가 실수하면 받아먹겠다는 것. 그나마도 삽질에 제대로 응수하지 못하고 헛발질만 하면서도 다른 작전은 아예 없다. 독일군 수뇌부와 흡사하다. 자기흡착식 대전차지뢰를 개발하면서 만족한 독일군 수뇌부, 그래놓고 혹시 저놈들이 이걸 만들면 어쩌지? 하는 노파심에 멀쩡한 전차에 시멘트를 발라서 무겁게 만들어 기동성까지 떨어트리는 바보짓… 그 한심한 짓이 패전을 이끌었다.

요즘도 일만 터지면 시청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 흔들면서 ‘형님나라 미국 만세!’ 외치는 치매 노인들 수준의 의식구조는 ‘으음… 김무성 괜찮군’일 것이다. 따라서 김무성은 이렇게 ‘아생’의 기지를 확보하고, 귀국 후 곧바로 ‘살타’에 나서고 있다.

현재 여야의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핵심의제 중 솔직히 말해 권역별비례대표와 국민공천제 중에서 유권자는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권력별비례대표란 결국 어찌하면 지기편 의석을 하나라도 적지에서 더 얻을 것인가의 정치권 위주 사고이고 국민공천제는 실상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지금까지 권력심부에서 낙점형태로 공천하던 공천권을 국민들 손에 맡기겠다는 ‘권력포기선언’이다. 즉 야당은 자기들 이익 위주의 주장으로 대들고 여당은 국민들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고 대드는 형국이니 이 싸움은 홍보 이니셔티브도 야권이 여권에게 완패다.

유권자들 중에서 새누리 세력이 정말로 도덕적이고 공정한 사람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김무성 부친의 친일전력이 여권을 비토할 이유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현실이 그러할 진대, 야권의 앵무새 타령은 여전히 되풀이 된다.

“새누리당이 나쁜 놈들인 줄 모르셨나요? 김무성이 친일파 후손인 거 모르고 계셨어요? 이제 우리가 이렇게 확실하고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 드렸으니까 절대로 새누리당 지지하지 마세요. 알겠죠?” 나는 이런 정당이 다시 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이라는 것이 더 신기하다. 내가 뭘 어떻게 잘해서 당신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는 청사진은 없고 “저놈들은 나쁜놈들이고 우리가 좋은놈들”만 줄창 외는 것, 연합군은 이미 상대를 모든 것에서 제압하고 있는데 대전차 지뢰나 만들고 탱크에 시멘트나 바르는 삽질로 안위하는 독일군 수뇌부와 전혀 다르지 않다.
▲문재인의 표정은 언제 어디서도 자신감보다 불안정헤 보인다.
천정배에 대한 집요한 공격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야권 분열론’도 찌메리트 삽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만에 하나 천정배 신당이 출범하여 ‘야권 분열’이 현실화 되고, 이로 인해 총선에서 야권 전체가 폭망해도 이는 현 새정치연합 문재인과 그 세력의 삽질이 만들어 낸 것이지 천정배가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죽음에 임박하면 누구라도 생존을 위해 꿈틀거리지 그냥 엎드려 죽지 않는 것은 상식… 지금 당밖의 신당론은 이런 절절한 생존본능으로 봐야 한다.

때문에 만에 하나 ‘분열은 다 망한다’는 협박(?)으로 신당의 출범이 안 되어도 그것이 천정배와 신당에 대해 호의적인 부동층의 마음을 돌리진 못한다. 왜?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단결해서 몰아줘도 ‘독일의 패망’을 예견하고 있으므로 구경꾼으로 만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전차 지뢰를 개발했으니까, 찌메리트 발랐으니까 우리 탱크는 이제 안전해 하고 안심하는 독일군, 새누리와 박근혜는 나쁜 놈, 신당 지지는 새누리 박근혜 지지와 똑같다는 주문만 외우면 신당 바람 사그러지고 야권은 단일화되며 정권은 그냥 굴러 들어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문재인파. 이 둘이 너무도 닮은 모습이라 여기는 것은 정녕 나만의 착시 현상일까.

독일군이 자기흡착 지뢰만을 생각하며 전차에 시멘트를 열심히 처바를 때, 소련은 T-34 전차로 저그러쉬를 현실로 만들었고, 미국은 비행기로 하늘을 덮고 보병에게는 전차 근처에 갈 필요조차 없는 바추카 포를 쥐어 주었다. 전쟁에 이기는 놈과 지는 놈은 이렇게 결정된다.

나는 지금 우리 정치권의 여야 대치구도를 보면서 다시 한 번 2차대전 말기 독일군과 연합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탱크에 시멘트를 바를 때가 아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75 






No comments:

Post a Comment